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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드림팀]고려대 안암병원 장기이식팀

입력 | 2011-12-14 03:00:00

생체 신장+뇌사자 췌장 동시이식 성공… 20대 청년 살려냈다




고려대 안암병원 장기이식센터 의료진이 모였다. 고난도의 장기이식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국내외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앞줄 가운데가 타 병원에서 상태가 안 좋아 포기한 간으로 이식수술에 성공한 김동식 소장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간암 2기 판정을 받은 김태곤 씨(65)는 올해 4월 간이식 대기자로 등록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다. 김 씨 앞의 이식 대기자는 250여 명. 뇌사자로부터 간을 기증받기는 어려웠다. 이식 순서를 기다리다가는 간암을 이겨낼 길이 없었다. 이런 김 씨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곳은 고려대 안암병원이었다.

이 병원 장기이식팀은 상태가 나빠 다른 병원에선 포기한 기증자의 간을 구할 수 있었다. 이식팀은 건강한 간을 구하지 못한 김 씨에게 이 같은 차선의 대책을 제시했다. 장기 이식 후 김 씨에 대한 집중 치료가 진행되자 상태가 나빴던 간은 점차 건강을 되찾았다.

고난도 수술이 이어지면서 이식팀은 최근 2년간 신장이식 100건을 돌파하며 국내에서 손꼽히는 장기이식 전문 의료진으로 주목받고 있다.

○ 장기 이식수술의 역사를 새로 쓰다

15년 동안 소아당뇨로 고생하던 김승원 씨(26)는 최근 신장과 췌장 동시 이식을 받고 새 삶을 얻었다. 이식팀은 올 10월 심한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투석까지 받아온 김 씨에게 어머니(51)의 신장과 뇌사자의 췌장을 동시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김 씨는 지난달 완치돼 퇴원했다.

국내 의료계는 이식팀의 진료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뇌사자의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하거나 산 사람의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한 적은 있었지만, 생체 신장과 뇌사자의 췌장을 동시에 이식한 것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식팀은 이미 신장이식을 세 번이나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췌장을 이식하는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몽골인 남성 간바트 씨(33)는 자국에서 신장이식을 받았으나 거부반응을 일으켜 지난해 5월 이식팀에 생체신장이식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그의 췌장 기능과 내분비 기능은 거의 다 망가져 있었다. 인슐린분비세포 파괴로 인슐린 분비가 결핍되는 제1형 당뇨병세가 나타나 췌장 이식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췌장 이식은 장기이식 분야에서도 매우 까다로운 수술. 국내에서도 6개 병원 정도만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식팀은 간바트 씨에 대한 수술에도 성공해 장기이식 수술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식팀을 이끄는 박관태 교수(외과·신췌장 이식 담당)는 몽골에서 ‘복강경 수술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1996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박 교수는 외과를 마친 뒤 군의관 생활 대신 몽골에서 4년 동안 의료봉사를 펼치다가 복강경 수술을 현지에서 처음 도입했다. 그러다 보니 몽골에선 박 교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가 몽골 전 대통령에게 건강상담을 해주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현지에서 장기이식이 어려운 몽골 환자들이 안암병원으로 쇄도하고 있다. 박 교수가 2009년부터 장기이식팀에 합류한 이후 신장이식 건수가 10배 늘었으며, 이 중 30%는 몽골인이다.

○ 이식 대기 기간 줄이는 의술

안암병원의 장기이식팀은 2004년 9월에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장기이식을 거의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신장 간 폐 심장 등의 주요 장기이식은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 병원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안암병원 이식팀의 장기이식 건수가 크게 늘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남들이 잘 안 하는 이식을 앞서서 시도했기 때문이다.

대개 간 이식의 경우 2년을 기다려야 겨우 받을 수 있다. 대기자만 5000여 명이다. 특히 신장은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도 많다.

이식팀의 김동식 교수(외과)는 “수많은 장기이식 경험을 통해서 남들이 꺼리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B급 장기도 마다하지 않고 적절한 수혜자를 골라 이식한 것이 환자들이 몰려드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B급 장기란 지방간 등 기증자의 장기 상태가 좋지 못해 다른 병원에서 이식을 꺼리는 장기다.

이식팀은 ‘B급 간=쓸모없다’는 통념을 깨버렸다. 김 교수는 “환자가 회복하면 간은 이식받은 사람의 생활습관에 맞춰 변하는데, 예를 들어 지방간을 이식받았더라도 관리를 잘하면 건강한 간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에서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버릴 단계까지 간 장기를 사용해 환자를 살리는 사례가 늘어가자 장기이식 대기 시간도 크게 줄었다. 최근 안암병원에서는 신장이식 대기 시간은 평균 2년 반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 “환자의 소변에 환호”

박 교수와 김 교수는 이식팀의 쌍두마차 역할을 한다. 두 교수는 고려대 외과 레지던트 동기인 데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팀에서 같이 일했다. 두 교수의 선의의 경쟁은 이식팀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2009년부턴 정재승 교수(흉부외과·심장이식팀) △유영동 교수(간이식팀) △변건영 전임의(간이식팀) △김수연 코디네이터(신장이식팀) △김수진 코디네이터(간, 심장이식팀) 등 주니어 의료진이 가세하면서 이식팀은 안정적인 진용을 갖췄다.

실력파 이식팀도 장기이식 수술을 하면 ‘긴장 모드’에 들어간다. 특히 상태가 나쁜 B급 신장을 이식할 때 수술 뒤 환자가 소변을 보지 못하면 초긴장 상태가 된다. 소변이 나오지 않으면 실패를 뜻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신장이식 수술에 실패하면 이식팀에 치명타가 된다”며 “수술 후 2주일이 지나도 소변이 안 나오는 환자가 생기면 정말 하루 종일 한숨도 쉬지 못한다”고 말했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나 소변을 보는 환자를 보면 진료실에서는 환호성이 터진다. 환자와 가족, 이식팀 모두 수술 성공을 자축한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