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시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때로는 B형 간염 보유자인 부모보다 자식들이 간경화나 간암으로 더 일찍 세상을 떠나는 슬픈 일도 일어난다. 2005년 후배 가족이 겪은 고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갓 의사가 되어 강남성모병원(현재 서울성모병원) 인턴으로 바쁘게 지내던 후배는 급성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초음파와 컴퓨터단층촬영 결과 8cm 크기의 간암이 발견됐고, 이미 폐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그의 어머니 역시 B형 간염 보유자로, 같은 해 간암 진단을 받고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할까 봐 편안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어머니는 “아들에게까지 B형 간염을 옮겼다”며 어떻게든 살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만성 간질환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B형 간염 산모로부터 간염 바이러스가 신생아에게 전파돼 모자가 함께 간염 치료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나라처럼 B형 간염의 유병률이 높은 나라에서 간염이 전파되는 주 경로는 분만이다. 분만 과정에서 간염 보균자인 산모가 신생아에게 옮기는 것이다. B형 간염 산모의 출생아가 예방조치를 받지 않으면 65∼93%가 B형 간염에 감염된다. 반면 신생아 출생 시 면역글로불린 및 예방접종을 동시에 받을 경우 B형 간염은 95% 이상 예방할 수 있다.
B형 간염 감염률은 백신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인구의 7∼8%였으나 1983년 국내에서 개발된 후 그 비율이 점차 떨어져 최근에는 3%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2002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신생아 12만6065명에게 무료로 예방접종을 실시해 신생아 감염을 96.7% 차단하는 성과도 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 혹은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계층이나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본인이 B형 간염 보유자인지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이는 B형 간염의 심각성과 예방사업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거나, 아직도 B형 간염 보유자 조사가 미진하다는 얘기다. 정부와 의료계가 B형 간염 100% 퇴치를 목표로 좀 더 완벽한 감염 예방사업을 펼쳐 모자 동시 감염이라는 불행을 막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