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거지 모양의 그릇에 요리… 조선후기부터 발달
전골이 찌개나 국과 다른 점은 고기나 해물에 채소, 버섯 따위를 섞어 전골냄비에 넣은 후 양념과 국물을 조금만 붓고 끓인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국이나 찌개와는 달리 주로 음식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국물을 먹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특징은 조리도구로 특별히 전골냄비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전골의 기원과 전골이 우리 음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엿볼 수 있다. 보통 전골은 옛날 전쟁터에서 투구를 엎어놓고 음식을 끓인 것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조재삼도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 전골은 그릇 모양이 벙거지인 전립을 닮아서 전립골(氈笠骨)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규경 역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고기 구워 먹는 냄비를 전골(煎骨)이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전골이라는 음식 이름이 문헌에 집중적으로 보이는 것은 순조 때다. 이학규, 조재삼 이외에 순조 때 인물로 ‘동사록(東사錄)’이라는 일본 기행문을 쓴 유상필 역시 일본에서 자신에게 전골 그릇을 선물로 보내왔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는 순조 때 전골이라는 조리기구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조리도구가 나오면서 우리나라의 고기 요리법이 한 단계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까지 고기는 물에 넣고 삶거나 끓여서 익혀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아니면 고기를 꼬챙이에 꽂아서 숯불에 굽거나 석쇠에 구웠지만 전골냄비가 나오면서부터 고기를 굽는 동시에 육즙을 우려낸 국물도 함께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포졸의 벙거지는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고 가장자리는 평편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학규가 묘사한 전골 요리법은 이 그릇에 저민 고기와 맛있는 채소를 지져서 먹는다고 했다. 가장자리를 평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고기를 올려서 굽고 채소도 함께 올려서 익혀 고기와 채소를 한꺼번에 익혀 먹는 동시에 고기의 육즙과 채소의 즙이 가운데 파인 곳으로 모이도록 만들어 국물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