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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 카페]日 ‘라이트노블’ 인기

입력 | 2011-12-17 03:00:00

판타지 문학-만화의 중간
가벼운 읽을거리로 선풍




초판이 100만 부 이상 팔린 일본 라이트노블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

일본의 20년 장기불황은 출판대국이라는 명성도 위협하고 있다. 경기침체 속에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출판업계의 매출은 해마다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선전하는 장르가 있다. 전통문학, 정통문예에서 비켜난 이른바 ‘라이트노블’이다. ‘가볍다(Light)’는 의미와 ‘소설(Novel)’의 합성어인 라이트노블은 이제 일본 출판계를 대표하는 어엿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서점이나 오프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어김없이 라이트노블이 여러 권씩 올라 있고, 초판 판매부수가 100만 권에 육박하는 책도 수두룩하다.

라이트노블은 책 표지와 책 속에 애니메이션풍의 일러스트를 많이 집어넣은 청소년 소설이다. 표지만 봐서는 만화책인지 게임 잡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짧은 대화체 위주로 돼 있어 읽기 쉽다. 워낙 유행이다 보니 수업시간 전 아침독서 시간에도 자유롭게 펴볼 수 있는 ‘권리’까지 얻었다.

스토리는 대부분 황당무계하다. 초판이 100만 부 이상 팔려 일본 라이트노블의 성공작으로 꼽히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가도가와 문고)은 시공을 넘나드는 초능력을 가진 여고생이 지구인으로 위장한 우주인, 미래인과 함께 동아리를 결성해 학내 문제를 해결해 간다는 스토리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소개된 ‘슬레이어즈’ 시리즈(전 27권·후지미판타지문고)도 마법이 등장하는 판타지 계통 소설이다. 이 밖에도 청소년들의 러브 스토리를 다루거나 학교생활을 그린 작품 등 내용은 다양하다.

일각에서는 라이트노블이 정통 문학과 만화의 중간 영역쯤에 위치하며, 읽는 책이라기보다 보는 책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나온다. 문학이라기보다 캐릭터의 매력을 중시하는 ‘오락’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라이트노블 붐은 중고교생뿐만 아니라 30대 젊은 독자층으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본 출판과학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라이트노블 판매액은 2004년 265억 엔에서 2009년 301억 엔(약 4485억 원)으로 14% 증가했다. 2009년 일본 전체 문고판 판매액(총 1322억 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가 넘는다.

출판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사들은 이 분야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일본의 대형 출판업체인 고단샤가 최근 라이트노블 문고를 창간한 데 이어 슈에이샤도 TV 애니메이션으로 히트한 작품이나 만화를 거꾸로 라이트노블로 출판하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이 이처럼 라이트노블에 비상한 관심을 갖는 것은 사양사업인 오프라인 출판업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성공한 원작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고 캐릭터 완구로도 만들어 팔 수 있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하면 이후 출판되는 소설의 판매부수도 급증하는 상승작용 효과가 톡톡하다. 가도가와 문고와 후지미판타지문고 등을 보유하고 있는 라이트노블 전문 출판사 가도가와 그룹은 슬레이어즈를 이미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만들어 한국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설의 누적 판매량도 2000만 권에 이른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