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시인
시인에게 고립과 유배는 축복이다. 또한 시인은 유랑을 통하여 일상과 상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만난다. 모험과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어찌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으랴.
초겨울 ‘물의 도시’ 여전히 활기 넘쳐
베니스영화제가 휩쓸고 간 해변은 스산했다. 베네치아의 상징 황금사자상을 놓고 벌이던 사랑과 경쟁과 화려한 조명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수상버스 바포레토를 타고 자르디니에 내리니 세계의 미술 제전 베니스비엔날레가 빛의 제국을 밝히고 있었다. 한국관의 피에타와 꽃무늬 군복은 인기였다. 현대예술은 아이디어와 정보의 각축장임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비엔날레 앞 숲 속에 있는 온실 카페 ‘세라’가 나의 비밀 게토였다. 그곳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면 뜻밖에도 시가 써졌다. 시가 잘 써지는 일은 두렵고도 위험한 일이다. 한국에서 온 시인에게 케이크와 티를 대접하며 배려를 아끼지 않는 ‘세라’의 사람들은 예술의 혈족이었다. 밤이 되면 온실 외벽은 그대로 흑백필름이 돌아가는 화면이 되었다. 쇼팽의 선율이 추운 마당을 구슬처럼 뒹굴었다.
베네치아는 관능적인 물의 도시이다. 물은 정화와 갱생의 상징이다. 나는 베네치아에서 지친 영혼을 씻고 시인으로 생생하게 일어서고 싶었다.
산마르코 광장 옆 두칼레 궁전의 대회의실에 있는 ‘천국’보다도, 건너편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의 당돌한 컬렉션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조르조 데 키리코, 이브 탕기, 잭슨 폴록 등 당시엔 불편하고 실험성이 넘쳤던 작가들에게 거액으로 격려를 했던 페기는 단순히 돈 많은 집 딸이 아니었다. 미로 속에 천 년을 헤아리는 성당과 유적들이 끝없이 나오고 수로 위에 꿈처럼 걸린 다리들이 있는가 하면 그 아래 검은 곤돌라의 노래가 흘렀다. 여기에 바람둥이 시인 카사노바의 스토리를 합하면 베네치아는 완벽한 카니발 도시가 된다. 이 도시에 넘치는 유리와 가면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었다. 그러나 한편 밀려드는 관광객에게 마지막 늙은 몸을 들이미는 슬픈 안간힘을 내보이는 것이 또한 베네치아라는 생각도 들었다.
경제 요동쳐도 주민들은 여유만만
한국 시인의 특강을 알리는 포스터가 나붙은 날,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학생들을 향해 머리 위에 팔을 올려 하트를 그렸다. 까르르 웃는 학생들에게 ‘한국 시에 나타난 물의 이미지’를 소개하며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의 디오니소스적인 물과,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의 시간의 물을 이야기했다. 셰익스피어가 ‘베네치아의 상인’을 쓸 시대를 전후하여 코리아에는 황진이가 있었다는 대목에 그들은 두 눈을 반짝였다. 나의 시 ‘물을 만드는 여자’에 나오는 대지모(大地母)와 생명력으로서의 물도 빼놓지 않았다.
빈센차 교수의 제안으로 시인 구이도 올다니 씨와 함께 진행한 창작 워크숍은 일반인까지 신청을 해서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올다니 씨는 탁월한 시인이었다. 이탈리아가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나라이고 노벨상 수상자만도 6명이나 배출한 나라라는 것까지 상기하여 주눅들 필요는 없지만 최근 우리 시단에서 일어난 미래파 논쟁이나 매너리즘 등도 이탈리아 문학사가 이미 거쳐 온 것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12월 1일 저녁, 드디어 베네치아 주정부 청사 콘퍼런스홀에서 나의 ‘오마주 베네치아’ 특강 및 시 낭송이 열렸다. 오마주? 나는 시인으로 어떤 것을 향해서도 쉽게 오마주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다는 말로 시작했다. 시인은 오마주하기보다 도발을 하는 존재이고 부정과 질문의 존재임을 전제했다. 베네치아 인근 베로나가 무대인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처럼 원수 집안의 왕자를 사랑한 우리의 낙랑공주가 사랑을 위해 최신 레이더 자명고를 찢어버린 얘기도 곁들이며 베네치아에서 쓴 시 중에 10여 편을 낭송했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마당에서 본 이런 글귀가 잊혀지지 않는다.
‘장소를 바꾸면 시간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미래가 바뀐다.’
베네치아는 나의 미래이다. 이제 나의 시 속으로 물살처럼 세차게 걸어 들어올 것이다.
문정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