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대한불교조계종 제28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송월주 스님이 1994년 11월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취임 법회에서 종단 개혁과 화합을 다짐하고 있다. 송월주 스님 제공
개혁회의는 정법종단의 구현, 불교 자주화 실현, 종단 운영 민주화, 청정교단의 구현, 불교의 사회 역할 확대라는 5대 지표를 설정했다. 총무원장 선출 권한을 가진 중앙종회 의원이 과거 50명 수준에서 300여 명으로 늘어난 것은 의미가 있다. 의현 스님 때는 종회 의원 수가 적어 특정인에 의해 쉽게 장악됐기 때문이다. 총무원장과 종회 의원 등 주요 직책은 겸직을 금지해 절대적 권력이 생길 가능성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불교의 체계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총무원과 교육원, 포교원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전문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원산 스님이 교육원장, 정락 스님이 포교원장을 맡게 됐다.
개혁불사와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조치도 단행했다. 선거에서 월탄 스님을 지지했던 정휴 스님과 현근 스님을 각각 불교신문 사장과 종단 본산인 조계사 주지로 임명했다.
종단은 오랜 분규로 만신창이 상태였고 제도적으로 정비할 것도 많았다. 승가교육 체계의 정비, 교육원과 포교원의 별원 정착, 사찰운영위원회와 중앙신도회 구성, 교구종회와 산중총회, 사설 사암 및 법인의 관리 등 3년간 45개의 종령법을 개정했다.
개혁 이전에는 총무원장이 본사와 말사 주지를 임명해 총무원장에게 지나치게 힘이 집중됐다. 그랬던 것을 본사 주지는 소속 스님들이 추천해 총무원장이 임명하고, 말사 주지는 본사 주지가 임명하도록 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봉은사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지만 총무원 직영사찰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직영사찰을 확대해 중앙 종무기관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재정을 확보하는 것은 역대 총무원장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 따르면 1995년 118개였던 불교계 복지시설이 2003년 469개로 4배 가까이로 늘어나는 급성장세를 보였다.
종단과 정부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도 큰 과제였다. 총무원장 취임 뒤 청와대에서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정부 실세들을 만났다. 의현 스님 체제를 지지했던 일부 측근들이 “월주 스님이 총무원장이 될 줄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협조할 것은 협조하겠다”며 “투명하고 정정당당한 것이 대정부 관계의 원칙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50년 가깝게 종무를 담당한 내 경험에 비출 때 총무원장은 종단 전체를 보듬으면서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특정 그룹의 이해를 대변해 정치투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정당이나 할 일이다. 종교인, 종교단체는 나라 전체의 안정을 위해서는 때로 물러설 줄도 아는 대승(大乘)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 종권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유착하거나 목소리 큰 쪽에 끌려다닌다면 총무원장 자격이 없다.
총무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중천금(重千金)이다. 자신의 이익과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해 종단의 운명이야 어찌됐든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과 달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5>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총무원 청사가 화염에 휩싸이는 등 치열했던 ‘98년 종단사태’의 현장에 있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