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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를 들고]우울증 앓는 50대 은행지점장 기억력장애 집중치료해 완쾌

입력 | 2011-12-19 03:00:00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우울증은 본인의 사회적 도태뿐 아니라 가족의 불행을 가져온다. 우울증은 기억력 저하를 동반하는데 때로는 치매라고 불리는 알츠하이머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이런 특성을 모르고 자신이 마치 낙오자가 된 듯이 여기고 사직서 제출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얼마 전에 50세 남성이 부인과 함께 우울증센터를 찾았다. 은행의 지점장인데 6개월 전부터 의욕이 떨어지고 업무 실적을 큰 부담으로 느꼈다고 한다.

그는 석 달 전부터는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내일 할 일을 밤새 걱정하면 머리 위에 바윗덩어리를 올려놓은 듯이 무거웠다. 견디다 못해 새벽에 수면제를 먹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두세 시간 자고 아침에 출근하는 일이 이어졌다.

이렇게 살 바에야 사직서를 내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가 있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까지 하는 자신이 두렵게 느껴졌다. 결국 부인의 권유로 진료실을 찾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끝마다 한숨을 쉬었다. 자세히 관찰했더니 생각의 속도와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다.

그가 힘들어하는 증상은 따로 있었다. 기억력의 저하를 무척 힘들어했다. 조금 전에 들은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고,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무척 당황한다고 했다. 직장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실적 수치나 금리도 기억이 나지 않아 고객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일이 자주 생겼다.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지만 뇌 속의 해마는 위축돼 있지 않았다. 우울장애였다. 그는 집중 치료를 받고 완쾌됐다.

알츠하이머병이 65세 이상에서 주로 생기는 반면에 우울증은 젊은 사람이나 중장년층에게도 잘 생긴다. 대부분 우울증 환자는 기억력 저하에 대해 알츠하이머병보다 더 힘들어한다. 집중력이 떨어져 단순한 계산을 하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

우울증에는 불면증이 따른다. 이때 수면제를 복용하면 우울증 증세와 기억력이 더 나빠진다. 심하면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긴 듯이 몇 분 또는 몇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전홍진 교수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머릿속 컴퓨터가 고장 난 것 같은 우울증이 생기면 직장 생활의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직장을 그만두면 우울증이 재발하기 쉽다. 증상이 호전된 뒤에는 일하고 싶어도 다시 복귀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울증으로 사직서를 쓰는 펜을 잠시 멈추자. 자신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 내가 느끼는 우울한 기분과 기억력의 저하가 우울증 때문이 아닌지 정확한 진단을 받아 보면 새로운 전환점을 찾을 수 있다.

전홍진 교수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