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욱 논설위원
민주당은 친노 세력이 주축인 ‘혁신과 통합(혁통)’과 당 대 당으로 합쳐 민주통합당을 출범시켰다. 친노 핵심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통합의 막후 설계자였다. 한국노총 세력이 합류하긴 했지만 사실상 ‘노무현당’으로 부활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의 단독 전당대회를 요구한 박지원 사단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성근 씨 등 친노 세력은 통합 노선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박지원식 정치패턴을 바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은 야권통합 내 갈등 축을 이해하는 열쇠다.
친노 세력은 집권하면서 영호남 지역주의의 벽을 모두 깨자고 외쳤다. 한나라당의 반발이야 그렇다고 쳐도 당시 여권 내부 호남권 인사들의 반발 수위도 거셌다. 호남권 인사들은 “이른바 ‘부산파’가 청와대를 장악해 놓고서 왜 가만 있는 우리를 흔드느냐”며 날을 세웠다. 여권 내 권력투쟁은 격화됐다. 호남권의 역(逆)차별론을 의식한 문 이사장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시절 민정수석실 직원들의 출신지를 따져보고 “인구 비례에 따라 호남 출신을 한 명 더 늘려라”는 고육지책을 낸 적도 있었다. 민주통합호(號)가 닻을 올리긴 했지만 앞으로 언제든지 내부의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대선 패배 후 불과 4년 만에 ‘노무현당’이 부상한 배경엔 이명박(MB) 정권의 실정(失政)이 큰 몫을 했다. 반MB 정서에 기댄 야권통합의 깃발 앞에 거칠 것은 없었지만 그들이 떠받든 ‘노무현 정신’은 실종됐다.
민주통합당이 19일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채택한 당론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무효화 결의안이었다. 노무현당의 첫 일성이 노 전 대통령의 최대 유업인 한미 FTA를 짓밟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진보좌파 진영을 향해 “개방 문제와 관련해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 사실로 증명된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 야권 내부에서 노 전 대통령의 능동적 개방전략은 사라지고 오로지 ‘뭉치면 이긴다’는 주술(呪術)만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통합 직전 ‘철새 정치인’ 이용희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의 복당을 슬그머니 승인한 것은 이 의원의 지역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 과연 노무현식(式) 새 정치란 말인가.
역대 대선에서 누구에 반대한다는 ‘안티(anti) 테제’로 승리한 적은 없다. 덩치만 키우는 통합보다 시대정신을 구현할 가치가 중요하다. 노무현 정신을 저버린 노무현당의 부활을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