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심근경색 ② 뒤늦게 사망 발표 ③ 금수산궁 안치■ 1994년 김일성 사망과 비교
1994년 7월 9일 발표된 북한 국가장의위원회는 공보를 통해 김 주석의 시신은 금수산의사당에 안치하고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 국가장의위원회가 19일 발표한 공보에서도 시신은 금수산기념궁전(금수산의사당이 이름을 바꾼 것)에 안치했고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했다. 김 주석 사망 때에는 후계자 김정일이 장의위원장을 맡았고, 김 위원장 사망 후에는 후계자 김정은이 장의위원 명단 첫 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의 사망원인이 심근경색이라는 점도 같다.
애도기간과 장의위원단의 규모에는 차이가 있다. 김 주석의 애도기간은 1994년 7월 8∼17일로 열흘간이었고, 김 위원장의 애도기간은 12월 17∼29일(13일)로 김 주석 때보다 사흘이 길다. 또 김 주석의 장의위원단이 111명이었던 데 반해 김 위원장의 장의위원단은 232명으로 두 배 이상의 규모다.
김 주석 사망 당시 민간 차원의 조문은 이뤄졌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994년 7월 14일 “남한 각당, 각파, 각계각층 인사들이 조문단을 파견하려 하는 데 사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총재, 재미언론인 문명자 씨,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 등이 방북해 김 주석을 조문했다. 또 당시 민주당 이부영 의원이 국회 질의를 통해 정부에 조문 의사를 타진하자 보수층이 격렬히 비난하면서 ‘조문 파동’이 일기도 했다. 이번 김 위원장의 빈소에 정부가 민간의 조문을 허용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경제 영향에 따른 정부 대응은 1994년 김 주석 사망 당시와 이번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 경제 수석부처가 합동회의를 열고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1994년에는 주로 물가 급등, 사재기 단속 등을 우려했다면 이번에는 국가 신용등급 강등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