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후계체제 앞날은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생전에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매제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핵심 실세들을 김정은 주위에 포진시킨 만큼 당장 김정은 후계구도를 뒤흔들 돌발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이 20대 후반에 불과하고 후계기반이 취약한 만큼 뚜렷한 업적을 내지 못하면 권력이 급속히 와해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애도기간이 끝나고 북한 권력 내부의 유동성이 극대화할 것으로 보이는 내년 2, 3월이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된다.
○ 김정은 후계의 불안한 앞날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초래된 권력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작업이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북한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 간부 대다수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를 거쳐 온 80대 이상 고령이다. 이들이 29세의 후계자와 보조를 맞춰 북한을 통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9일 발표된 장의위원회 명단을 봐도 1∼10위에 오른 인물 중 대다수가 80대 이상의 고령이었다. 김정은과 이영호 총참모장(69), 김영춘 인민무력부장(75)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의 평균 나이는 83.6세로 사실상 김정은과는 두 세대 이상 차이가 난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원로 그룹과 김정은의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없어진 상태다.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늙은 간부들을 제거하고 신진 그룹으로 권력지도부를 재편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방에서는 최근 1, 2년 사이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젊은 간부들을 중용한다’는 명목으로 나이 든 간부들을 마구 숙청하는 바람에 중간급 간부들의 원망이 거센 상태다.
대대적인 물갈이 바람은 곧 중앙에도 몰아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장의위원회 명단에 오른 232명 중 3년 뒤엔 적잖은 인물이 권력 무대에서 사라질 것으로 판단된다. 김 위원장의 개인비서이자 네 번째 부인이던 ‘베갯머리 실세’ 김옥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주목된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 시절에 권력을 틀어쥐고 각종 이권을 행사하던 기득권층의 반발이 예상된다. 더욱이 국정운영 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권력 장악에 실패하거나 내년 강성대국 진입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어린애가 뭘 알겠느냐”는 불신과 냉소도 퍼져 있다고 한다.
○ 당분간 장성택이 섭정할 듯
북한은 비록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51시간 만에 발표하긴 했지만 그 사이 나름대로 조문 행사를 세심히 준비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발표 때와 여러모로 흡사하지만 전권을 쥔 실세의 입김이 뚜렷이 느껴지고 있다. 김정일 사망 발표문 마련부터 부검 사실 공개, 주민들에 대한 통보 방식, 애도기간 선포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 이 정도의 결정권을 가진 인물은 김정은과 장성택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모든 행사를 총괄하기보다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장례를 직접 치러본 장성택이 뒤에서 모든 장례 절차를 총괄 지휘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으로서도 고모부인 장성택이 가장 믿음직할 것이다. 또 40년 가까이 김정일의 오른팔로 살아오면서 통치 방법부터 시작해 웬만한 간부 개개인별 성향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는 장성택의 화려한 경력은 김정은에게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문제는 장성택의 섭정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에 있다. 장성택이 ‘북한판 수양대군’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그럴 경우 김정은이 과연 장성택을 어떻게 견제할지도 관심사다.
김 위원장 생전에 구축해 놓은 노동당과 군부에 대한 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정상적으로 가동할지도 김정은 체제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변수이다. 김정은에 대한 군부 인사들의 충성심이 떨어질 경우 당과 군의 상호감시 시스템이 붕괴돼 통제 불능의 상황에 빠지면 군부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