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겁쟁이, 땅 말고 앞을 봐요”
사력을 다했지만 썰매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푸시 바를 잡고 있기만 했지 ‘무임승차’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일 평창 알펜시아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장에서 강광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뒤)의 지도 아래 2인 스타트 체험을 하고 있는 본보 유근형 기자. 사진 속 봅슬레이는 강 부회장이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1만 달러에 산 중고품이다. 운반비만 5000달러가 들었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제공
“눈 치울 각오부터 해야 할 겁니다.”
봅슬레이 체험을 앞둔 18일 강광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은 어두운 소식을 전해왔다.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장이 폭설에 파묻혔다는 것. 하지만 체험 당일인 19일 기자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말끔히 정돈된 훈련장과 대면했다. 한국 봅슬레이 역사를 개척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강 부회장은 꿈보다 좋은 해몽을 내놨다. “알펜시아 직원들이 훈련을 위해 완벽하게 제설작업을 해줬습니다. 어제 폭설에 묻힌 훈련장을 보니 암담한 국내 겨울스포츠 현실이 떠올라 우울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영하 10도에 칼바람까지 불었지만 의욕이 솟구쳤다. 국가대표 1차 예선 통과자들의 훈련에 동참해 봅슬레이 스타트 체험에 돌입했다. 봅슬레이는 스타트가 기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4인승 봅슬레이를 홀로 미는 첫 훈련이 시작됐다.
연이은 시도에도 기록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 스켈리턴 국가대표 박지혜 씨(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박사과정)가 한마디 한다. “땅을 보지 말고 앞을 봐야지요.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떡해요? 혼자서는 안 되겠네요.”
두 번째 과제인 2인 스타트는 21일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 종목이다. 역시 4인승 봅슬레이를 사용했다. 기자에게는 봅슬레이 맨 앞에 탑승하는 파일럿 역할이 주어졌다. 봅슬레이 마지막을 책임지는 브레이크맨 역할은 강 부회장이 맡아줬다.
2인 스타트 첫 시도에서도 선수와 일반인의 격차를 절감했다. 푸시 바를 잡고 사력을 다했지만 힘이 썰매에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강 부회장의 조언대로 허리를 낮추고 발 구르기 자세를 가다듬자 두세 번의 도전 만에 기록이 7초대까지 나아졌다. 마지막 시도에서는 최고 기록인 7.2초를 기록했다. 맨주먹으로 봅슬레이에 도전해 지난해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세계 19위에 오른 강 부회장은 “봅슬레이는 세계와의 격차를 가장 빨리 줄일 수 있는 종목이다. 여성은 팀 구성조차 못했지만 2018년 평창에서는 메달도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유 기자도 느끼셨지요. 금방 늘지 않나요”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한국 봅슬레이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했던 실업팀은 이미 해체됐다. 대표팀 선수들도 월 60여만 원의 훈련수당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강 부회장은 “평창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전 세계인에게 약속한 꿈나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당장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첫 女국가대표팀에 올라타라” 6명 구슬땀 ▼
오늘 최종 선발전… 3명만 통과
봅슬레이 여자 국가대표를 꿈꾸는 6명이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맹훈련을 하고 있다. 맨 뒤부터 시계 방향으로 강광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 유혜원 김유진 박지혜 황민정 손연경 김선옥.
국내 첫 여성 국가대표 봅슬레이 팀이 곧 탄생한다. 10일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통과한 여성 봅슬레이 선수 6명이 최종 엔트리 3명에 들기 위해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육상 역도 씨름 탁구 등 각기 다른 종목에서 뛰었던 선수이다. 하지만 목표는 하나였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시상식에 태극기를 올리는 것.
탁구 선수 출신 손연경(25)은 두 번째 도전이다. 그는 “지난해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1차 예선을 통과했지만 여성 팀이 없어져 꿈을 접었다. 이번에는 태극마크의 꿈을 놓치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강광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부회장은 “여자 봅슬레이는 남자에 비해 외국과 전력 차이가 적다. 힘과 스피드를 갖춘 유망주들이 모인 만큼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최종 선발전은 21일 알펜시아 봅슬레이 스타트 훈련장에서 열린다.
평창=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