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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잊을 수 없는 ‘그날’]폭우로 연주회 취소된 경기필 구자범의 7월 27일

입력 | 2011-12-22 03:00:00

공연 하루전 우면산 산사태… 망연자실
이달 지각 공연서 기립박수… 전화위복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2월 연주회를 앞두고 웹툰 작가 ‘굽시니스트’에게 의뢰해 교향시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다’의 배경을 만화로 그렸다. 구자범은 “클래식이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해 굽시니스트와 계속 작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공

“왜 니체를 얘기하는데 이런 영화음악 같은 걸 썼을까요. 그걸 알려면 당연히 그 사상(思想)을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7월 27일 오후 8시 경기 수원시 경기도문화의전당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습실. 경기필 상임지휘자 구자범은 화이트보드와 그랜드피아노 사이를 오가며 열정적으로 강의를 이어갔다. 바로 다음 날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제123회 정기연주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앞두고 지휘자가 직접 작품의 성격과 해석 방향을 설명하는 ‘콘서트 지피지기’ 자리였다.

“이걸 안다고 음악이 더 좋게 들리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음악 속으로 들어갔을 때 일어나는 그 마법을 알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의가 끝나자 청소년부터 백발의 관객까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오후 10시경 사무실로 돌아가자 예술의전당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폭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로 관객들이 공연장에 접근하기가 어려워 내일 공연을 열 수 없는 상황이니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아침 산사태로 예술의전당 앞 남부순환로도 진흙탕이 됐지만 예술의전당은 저녁까지도 ‘예정된 일정은 소화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지휘자 구자범도, 소식을 들은 단원들도 망연자실했다. 이번 연주회는 어렵기로 유명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으로만 꾸민, 야심 차게 준비한 연주회였다. 객원단원도 40여 명이나 불러 연습한 터였다. 프로그램북과 포스터도 무용지물이 됐다. 경기필은 이날 오후 11시 3분 경기필 웹 카페에 연주 취소 공지를 올렸다. ‘그간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온 경기필로서도 허탈함과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만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힘을 내어 열심히 뛰어볼 각오입니다.’

5개월 뒤인 이달 14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층까지 객석이 거의 다 찼다. 1부가 끝나고 이례적으로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은 7월에 못한 그 연주회를 다시 무대에 올린 경기필과 구자범에게 주는 찬사의 표시였다. 레퍼토리와 협연자는 같았지만 객원단원은 당시와 많이 달라져 새로 연습하다시피 했다.

“7월 연주회가 취소됐을 때는 담담했는데, 이 연주회를 다시 하기로 결정한 뒤 오히려 허탈했습니다. 객원단원을 오디션해서 뽑는 것도 아니고 이 기량적으로 어려운 곡을 언제 또 연습시키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죠. 하지만 연주회가 끝나고 난 뒤 객석의 반응이 고무적이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단원들도 뿌듯해했고요.” 구자범은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 3월 경기필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첫 만남에서 단원들은 “말러나 슈트라우스의 대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의욕을 표시했다. 그는 서곡과 협주곡, 메인 작품으로 이어지는 국내 연주회의 틀을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6월에는 레스피기의 ‘로마 3부작’을 국내 최초로 한번에 무대에 올려 찬사를 받았다.

성과를 인정받아 경기필은 2012년에 단원 20여 명을 충원하고 2관 편성에서 4관 편성으로 규모를 늘린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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