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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입력 | 2011-12-24 03:00:00

외관은 기도하는 손, 내부는 로마 카타콤 형상화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한 해를 돌아보는 마음은 저마다 천양지차일 것이다. 그래도 연말이 설레는 이유는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기대 때문이리라. 이런 연말의 막바지에 성탄절이 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늘어나고 색색의 전구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래서 성탄절 즈음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즐거운 기분이 든다.

○ 골고다 언덕을 형상화한 계단

성탄을 맞아 들러본 곳은 우리나라 건축 1세대의 거장 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경동교회(서울 중구 장충동 소재)다. 교회의 이름은 서울(京)의 동쪽(東)에 있다는 뜻이다. 1945년 광복 이후 첫 예배를 올린 역사 깊은 곳이다. 서울의 동쪽에 있던 장충동이 지금은 서울 한복판이 되었다는 사실이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해 준다. 현재의 건물은 1981년 8월 완공된 것이다.

경동교회 건물에는 여러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우선 건물 외관에서 모든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십자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건물이 전체적으로 사람이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건물 스스로가 외형을 통해 교회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근은 경동교회를 만들면서 편의성에는 중점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은 불규칙한 배열의 벽돌 층계를 따라 건물 뒤쪽까지 걸어올라 가야만 예배당 입구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불구불한 층계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올랐다는 골고다 언덕 고난의 길을 상징한다는 걸 알게 되면 걸음의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아마도 매주 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 계단 때문에 경건함으로 충만해지리라.

천천히 층계를 올라가며 건물을 살펴보면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긴다. 거대한 성채 같은 건물 어디에도 창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예배당에 들어가 조명을 켜지 않은 실내를 살펴보니 한낮인데도 어둠이 가득했다. 이런 설계는 이탈리아 로마의 카타콤(Catacomb), 즉 지하묘지의 상징성을 도입한 것이다. 카타콤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던 초기 기독교도들이 탄압으로부터의 피난과 예배를 위한 장소로 사용했었다.

○ 하늘에서 쏟아지는 포근한 빛

어둠 때문에 예배당 전면에 걸린 십자가 위 천창(天窓·지붕에 낸 창)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빛이 십자가와 제단을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었다. 한쪽에는 성탄을 알리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육중한 모습의 파이프오르간이 서 있었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어둠 사이로 내려오는 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빛은 지구 위 어디에나 공평하게 내려앉는다. 하지만 사막의 햇빛과 북극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교회 안에서 내가 느끼는 빛은 지금껏 알고 있던 어느 햇살과도 달랐다. 그 빛은 같은 한 해를 지나온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억을 갖게 되는 것처럼, 내게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또 하나의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경험이 존재하는 걸까.

눈을 감았다. 동굴에 홀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포근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손을 모았다. 예배당이 외형으로 말하는 이야기를 이제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일요일에 다시 교회를 찾았다. 직접 예배에 참석해 경동교회 예배당의 참모습을 느껴보고 싶었다. 목사님은 설교에서 천사들의 찬양 같았다는 오랜 옛 시절 새벽송(성탄절 새벽에 교회에서 교인들 가정을 찾아가 불러주는 노래)의 감격을 회상하셨다. 오르간 연주자의 손과 발은 3단으로 된 수많은 건반과 페달을 넘나들었다.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내게는 그 분주함마저 경이로웠다. 거대한 오르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율은 끊임없이 공간 속을 채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은 성탄을 축하하듯 아름답게 반짝였다. 기분 좋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절로 인사가 나오는 듯했다.

“기쁜 성탄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도움말=안미정 경동교회 부목사)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