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령 작가·상담자
“아니, 행복한 부부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요? 도대체 행복하다고 말하는 부부를 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어.”
그러자 곁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런 소리 마십시오.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런 부부 중 한쪽 배우자의 속은 다 타서 숯검정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은 거 모르세요?”
그날 저녁 우리들의 열띤 토론은 지나친 배금주의에 물들어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진 현대사회에서 과연 이상적이고 행복한 결혼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삶의 형태로 묘사되던 결혼이라는 게 정말 짊어질 수도, 그렇다고 내다버릴 수도 없는 시대의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것일까.
이제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믿고, 인생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던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꿈처럼 다가오는 운명적인 사랑과 결혼을 기대하던 젊은이들의 마음도 그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인륜지대사’서 ‘애물단지’로 전락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꿈꾸고, 결행하며, 실망하고, 심지어 좌절을 경험한 후에 다시 재혼이라는 승부수를 던져보기도 한다.
결혼은 서로 매력을 느끼는 남녀가 만나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는 연애처럼 개인적 사건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도저히 어울리기 어려운 두 종류의 사람이 만나 가족을 이루는 사회적 사건이다. 남녀 간의 연애와 결혼은 같은 나무에 피는 꽃이 아니다. 우리는 결혼해서도 낭만적인 사랑의 꿈을 함께 지니기 바라지만 결혼에서는 안정과 보답을 바라며 자기 마음에 들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남자 혹은 여자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모든 동화가 왕자와 공주가 결혼한 다음 허둥지둥 막을 내리는 이유도 그 후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결혼의 단면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서라는 해석도 있다.
그렇지만 독신을 지키고 있는 남녀도 자유로운 인생이라고 스스로에게 강변하지만 어떤 때 외롭고 불안한 상태로 돌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남색 치마, 흰 저고리를 즐겨 입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시인 노천명의 수필, ‘설야산책’의 한 부분이다. 사람들이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독신의 외로움이 절절하게 스며 나온다.
결혼하거나 하지 않거나 어느 쪽 길로 가도 이런 문제 아니면 저런 문제와 부닥치게 되어있다. 문제에 부닥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정석이기 때문이다. 문제없는 인생의 상황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어떤 문제를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를 지니고 있다.
인생을 사막이나 망망한 바다에 비유해 본다면 우리는 삶의 오아시스나 섬을 결혼에서 찾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오아시스나 섬은 배우자가 내 앞에 대령해 주는 장소가 아니다. 결혼한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함께 힘을 합해야만 찾을 수 있는 숨어 있는 장소다.
‘우리’라는 시각서 입체적 조망을
자유냐, 속박이냐 아니면 사랑이냐, 고독이냐 하는 식으로 결혼에 대한 다양한 논의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결혼을 결정하기 어렵거나 결혼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높은 산에 올라 그 앞에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초원과 구릉과 강을 바라보듯 나와 상대방을 우리라는 풍경 속에서 함께 바라보며 입체적으로 결혼을 조망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혼’이 무엇을 내게 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내가 ‘결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우애령 작가·상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