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집단따돌림 얼마나 무섭기에 청소년들 생을 포기할까
이 양이 집단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건 중학생이 되던 6년 전부터. 당시 같은 반이던 이 6명은 ‘얼굴이 꾀죄죄하다’ ‘옷이 촌스럽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이 양을 놀렸다. 이들은 점심시간이면 밥이 담긴 이 양의 급식판을 일부러 뒤엎었다. 이 양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테이블을 차지해 이 양은 선 채로 밥을 먹은 적도 많았다.
집단 괴롭힘은 고교 진학 후에도 계속됐다. 이 양에겐 ‘임신을 했다’ ‘돈을 훔쳤다’는 거짓 소문이 늘 따라다녔다. 그나마 이 양과 친분이 있었던 친구 2명은 화장실에 불려가 폭행당한 뒤 모두 전학 갔다. 두 살 어린 남동생도 누나 탓에 따돌림을 당했다. 이 양은 올해 초 이름까지 바꿔 다른 도시로 전학 갔다. 이 양은 “왕따 사실이 들통 날까 봐 늘 초조하다”며 “일본 사람이 쓴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을 100번도 넘게 읽었지만 죽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다”고 말했다.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2일 대전의 한 여고생이 14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고 20일에는 대구의 한 중학생이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했다.
본보가 23일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입수한 상담 자료집을 보면 교실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10대들의 절규가 그대로 녹아 있다. 평소 괴롭힘을 당해온 고교 1학년 남학생은 한 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억울하게 몰리고도 “결백을 주장하면 더 큰 보복을 당한다”며 별다른 항변도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급우에게 매주 3만 원씩 상납했던 한 중학생은 “돈을 안 가져오면 죽도록 때리겠다”는 협박에 부모 지갑에서 수십만 원의 돈을 훔치기도 했다. 이 학생은 5년 넘게 괴롭힘을 당하고도 “괜히 걱정만 끼치고 보복을 당할까 봐” 가족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다.
일선 교실에서는 학생 10명 중 1명 이상이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4명 중 1명이 가해 경험이 있을 정도로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이 만연해 있었다. 동아일보가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100명씩 모두 2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해 본 학생이 26명으로 전체의 13%였다.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에 가담해 본 학생은 55명으로 28%에 달했다.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해 본 학생의 62%는 자살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 중 42%는 누구에게도 고민을 말하지 못했다. 또 가해 학생 중 42%는 ‘단순 호기심’이나 ‘다른 친구들이 하니까 따라했다’고 답했다.
경기 안산시의 한 중학교 교사는 “예전에는 따돌림을 당하다 전학을 가는 피해 학생에게 최소한 ‘잘 가라’는 인사는 했는데 요즘 애들은 ‘넌 지구를 떠나야 된다’ ‘넌 죽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말을 하는 친구를 말리는 학생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 왕따’가 확산되고 있다. 특정 학생에 대한 험담을 인터넷에 퍼뜨리거나 안티카페를 만들어 괴롭히는 것이다. 한 학생을 지목해 메신저 접속을 단체로 차단하거나 일촌 신청을 집단 거부하는 방법도 사용된다.
별명이 ‘바이러스’인 여중생 박모 양(14)은 평소 학교에서 “너를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썩는 것 같다”는 놀림을 받았다. 한 남학생은 박 양을 기괴한 괴물로 묘사한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고, 친구들은 수십 개의 댓글을 달았다. 해당 게시물은 다른 사이트로 급속히 퍼졌고 그 충격으로 박 양은 올해 2학기 학교를 전혀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동물들은 한두 마리의 ‘속죄양’을 만들어 조직의 응집력을 강화시키려는 본능이 있는데 사람도 비슷하다”며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도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과감히 조직을 박차고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 남아 고통을 인내하려는 심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