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 도쿄특파원
얼마 전 도요타자동차 창업자의 손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이 일본의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글로벌 기업의 CEO는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현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도요다 사장의 인터뷰 내용은 뜻밖이었다.
그는 10여 분간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국내 생산 여건이 어려워도 국내 생산 300만 대를 고수하겠다”며 “도요타자동차는 공익(公益)자본주의를 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본사 종업원과 부품 하청업체 직원을 포함해 30만 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로서는 300만 대 국내 생산은 타협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도요타가 많은 이익을 내는 것보다 고객과 종업원, 하청업체, 지역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도요다 사장은 일본 내 생산을 고집하는 이유를 “단지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고 했다. “일본의 첨단기술과 일본 종업원들의 성실성이 만들어낸 ‘메이드 인 저팬’ 자동차는 해외공장에서 생산되는 도요타자동차를 지도하는 본보기”라는 것이다. 국내 기술과 종업원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신뢰인 셈이다. ‘회사는 안정적인 고용과 노동조건 개선에 노력하고 종업원은 회사 번영을 위해 협력한다’는 창업 이념을 고수하는 도요타자동차에 일본 국민이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보내는 이유다.
당장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하면 ‘잉여인간’으로 취급하고, 생산비가 싼 지역을 찾아 ‘글로벌화’하는 일만이 기업의 미덕이 돼 버린 시대에 도요다 사장의 ‘공익 자본주의’는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른다. 실제로 도요타자동차의 경영은 심각하다. 3·11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생산계획에 큰 차질을 빚은 데다 엔화 가치마저 급등해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57% 넘게 줄었다. 해외 투자가들은 “이제 보통 회사가 돼 버린 도요타자동차에 미래가 없다”며 손을 털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에 8000엔에 육박하던 주가는 현재 2400엔대로 폭락했다.
비슷한 위기에 처한 한국 기업이라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종업원이나 하청업체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보다 주주의 이익을 우선하는 데 익숙한 우리 기업들의 선택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한국 기업의 수익극대화 전략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한국을 이만큼 키워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최근 수년간 크게 달라진 것은 ‘삼성’과 ‘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생산성과 효율성을 위해 끊임없이 뛰기만을 강요하는 한국 기업의 ‘인정 없는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돈 잘 버는 한국 기업이 아니라 국민에게서 진정한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기업이 이제는 한국에서도 나왔으면 좋겠다.
김창원 도쿄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