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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작가 림일이 쓰는 김정일 이야기] 인민복

입력 | 2011-12-26 03:00:00

伊원단으로 만든 수만달러짜리 잠바…
그 옷 입고 인민 고통 알기나 했을까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이 공항에 직접 나와 영접하고 있다. 김정일이 입은 짙은 갈색 잠바가 인민복이다. 동아일보DB

2000년 6월 평양에서 DJ를 만나 잠시 블랙에서 화이트로 이미지를 개선했던 김정일의 의상에서 단연 돋보인 것이 짙은 갈색 잠바였다. 품이 넉넉하고 활동성이 좋은 서양식 상의인 이 옷을 가장 많이 입은 국가원수는 김정일이다. 성인이 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옷만 입고 다닌 그의 잠바 사랑은 정말 대단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일 동지의 잠바 차림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위대한 장군님의 형상을 매우 잘 표현한다’고 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200여 개 나라 정상 중에 오로지 잠바를 입었던 사람은 그가 유일하니 어쩌면 이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이 세상에서 평생토록 입은 것도 모자라 저세상에도 입고 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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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필자가 평양에 있을 때 노동당 강연에서 들은 내용이다. “당과 국가 간부들이 김정일 장군님께 ‘일을 좀 쉬면서, 건강도 살피면서 하십시오. 장군님께서 건강하셔야 우리 조국이 융성 번영합니다. 인민의 간절한 염원입니다’라는 건의를 수도 없이 올렸다. 그럴 때마다 그이께서는 ‘내가 쉬면 우리 인민들이 힘듭니다. 나도 수령님의 혁명전사로 단 하루도 쉴 수 없습니다. 하루 3시간 쪽잠을 자며 일을 해도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항상 잠바를 입습니다’라고 하시였다. 이토록 검소하시고 자애로우신 김정일 장군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 인민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로 우리는 이 영광, 이 행복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또한 대를 이어 그이께 충성하는 것이 공민의 첫째가는 의무로 간직하여야 한다. 세상이 열백 번 변해도 경애하는 장군님을 따르는 우리의 마음은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인민이 각 기관과 단체에서 노동당 강연을 의무적으로 청취했다. 당시는 먹고사는 것이 시급해 그게 과연 진짜일까 하는 의혹을 품은 적도 없었다. 서울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생전 김정일이 인민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면 국가로부터 식량을 못 받는 대다수 북한 주민들의 궁핍한 몰골은 뭐라고 해야 할까. 역전과 시장에서 음식쓰레기를 줍거나 훔쳐 먹는 고아와 가출 청소년들,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기에게 줄 젖조차 없는 엄마들, 하루 한 끼 풀죽도 못 먹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노인들도 엄연히 김정일의 인민이었다. 또 굶주린 창자를 끌어안고 자유를 찾아 이역만리를 떠도는 수십만 탈북자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특수 주문한 이탈리아 고급 원단으로 만든, 한 벌에 수만 달러 하는 잠바를 입었던 김정일이 과연 대다수 인민이 멀건 죽으로 연명하며 힘들게 사는 것을 알기나 했을까. 전혀 몰랐을 것이다. 건강에 해로운 것은 굳이 알려하지 않았던 그가 복잡한 것이 싫어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정장보다 편한 잠바를 입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김정은도 인민복을 입고 있다.

‘소설 김정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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