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청진기를 들고]‘중년치매’ 절망감에 포기말아야… 남아있는 능력 챙기면 호전된다

입력 | 2011-12-26 03:00:00


알츠하이머병 환자인 30대 ‘서연’이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가 숱한 화제를 낳으며 얼마 전에 끝났다. 흔히 치매로 불리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을 과장하지 않고 실감나게 묘사했고, 노인병으로만 알았던 치매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인지 노인이 주를 이루던 기억장애 클리닉에 최근 40, 50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주변에서도 이 병에 대해 궁금해하는 젊은 사람이 많아졌다. 노인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이 극 중 주인공과 같이 40대 이전에 발병하는 경우는 10만 명당 1명으로 드물다. 3년 전 남편과 함께 내원한 주부 A 씨(43)가 그랬다.

A 씨는 병원을 찾기 2년 전, 해외지사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사를 했다. 평소 명랑하고 적극적이라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할 것이라는 남편의 기대와 달리 A 씨는 늘 의기소침했다. 매사에 자신이 없었고 쉽게 불안해하고 종종 잠을 이루지 못했다. A 씨와 가족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생긴 일시적인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A 씨는 늘 장을 보던 슈퍼마켓의 옥외주차장에서 출구를 찾지 못해 1시간을 헤매다가 남편의 도움을 받아 귀가했다. 결국 A 씨는 급히 귀국해 진찰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초로기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받았다. 병원을 찾아온 A 씨가 “운전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부모 노릇을 하겠냐”며 연신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 선하다. 그녀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조차 기피했고 무기력한 생활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초로기 치매의 큰 문제점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발병 이후 절망 속에 삶을 포기하며 치료를 거부한다. 또 스스로 병을 인정하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재 나온 약은 아직 완치보다는 증상을 부분적으로 개선하고 진행을 지연시키는 수준이지만 약물 치료를 통해 병의 악화를 최대한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삶을 쉽게 포기하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이 실로 안타깝다. 드라마 속 주인공도 약물 치료를 포기한 뒤 증상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대부분의 초로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발병 후 상당 기간 자신의 처지와 가족에 대한 연민으로 괴로워한다. 괴로워하던 A 씨에게도 지속적인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하면서 엄마이자 아내라는 자존감을 심어주는 데 집중했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잃어버린 능력보다는 남아 있는 능력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면서 그녀를 괴롭히던 우울과 불면 증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또 스스로 운전하여 쇼핑을 다닐 만큼 나아졌다. 이번 드라마에서 주인공과 가족이 겪는 절절한 고통이 그저 참고 견뎌야만 하는 짐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통해 호전될 수 있는 증상이라는 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해 무척 아쉽다. 우리가 치료해야 하는 대상은 질환이 아니라 끊임없이 병을 부정하는 환자와 슬픔에 잠겨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가족이다. 체계적인 정신치료와 교육을 통해 환자와 가족이 병마로 인한 분노와 절망을 잘 극복하고 치료 의지를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 알츠하이머병을 바르게 마주 대하는 길이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