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걱정-핀잔 속 매진 사태라니 모든 걸 쏟아부어 혀 굳고 정신 몽롱”
《 처음이었나. 무대 위에서 내 한계 지점과 맞닥뜨린 것이. 아니 엄밀히 말하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1999년 동초제 춘향가 8시간 완창 때였다. 공연 절반인 4시간쯤 지났을 때 스무 살 내 몸과 정신이 더 버틸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외롭고 두렵고 모든 것이 새까매졌다. 공연을 멈추고 컴컴한 무대 뒤로 멍하게 돌아 들어갈 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던, 지금은 작고한 은희진 선생님께서 “잘하고 있다”라며 포근히 안아주시지 않았더라면, 내게 8시간 완창이라는 경험은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올해 6월 19일. 나와 나의 예술적 파트너들이 만들어 낸 신작이자 우리가 만든 두 번째 판소리 ‘억척가’의 마지막 공연 날이다. 》
2011년 6월 19일 이자람은 창작 판소리 ‘억척가’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쓰러졌다. 그는 “그대로 캡슐에 나를 넣어 우주로 날려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LG아트센터 제공
5월 20일부터 사흘간 의정부 국제음악제에서 ‘억척가’ 초연을 마치고 6월 14일부터 LG 아트센터에서 5회 공연을 남겼을 때 일이 벌어졌다. 어렸을 때 이미 겪은 수두가 온 얼굴을 뒤덮었다. 공연이 몸에 얼마나 무리를 주었던지 몸의 밸런스와 열을 모조리 헤집어 놓은 것이다. 두려웠고 몸에게 미안했고 한편으론 신났다. ‘어느 배우가 무대에서 이렇게 모든 것을 쏟아낼 기회를 갖는단 말인가.’
의정부 공연이 입소문이 나면서 LG아트센터 5회 공연 티켓이 매진됐다. 공연 2시간 전부터 관객이 줄을 섰고 웃돈 주고라도 표를 구하고 싶다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사천가’를 만들고 5년이 지나서야 우리의 판소리를 알아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벅차면서 야속했다.
무대 위에서 ‘장하다, 조금만 더 버텨다오’라는 마음이 어떤 따스한 에너지로 나를 에워쌌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혀가 마비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여기가 어디인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여기서 버텨내야 하는데 누가 날 도와줄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한계 지점에 서 있었다. 이제 20분 남은 것 같은데, 이제 10분 남은 것 같은데, 이제 추선이가 죽으러 가는구나, 이제 억척네가 길 떠나는구나, 아, 신발 끈 풀렸구나, 넘어지지 말아야지, 억척네 이야기를 끝까지 마쳐야지….
정신을 차려 보니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 앞에 서 있었다. 울음이 터졌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몸을 혹사해 무언가와 싸우며 살아가는 것인가. 세 차례 커튼콜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쓰러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기 싫고, 그대로 캡슐에 나를 넣어 우주로 날려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2시간 넘게 분장실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이제 곧 2012년이다. 억척가의 재공연이 기다리고 있어 벌써부터 두렵고 심장이 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가, 무엇과 이렇게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가. 답은 밖에 없다. 답은 내 안에 있다. 너무도 행복한 삶이다.
이자람 소리꾼·판소리창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