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김일성 수령님, 김정일 장군님… 그럼 김정은은? 김일성大 출신 주성하 기자가 보는 北일상의 변화
○ 대장님?… 통치자 호칭으로는 어색
북한에선 김일성은 ‘수령님’, 김정일은 ‘장군님’으로 불린다. 김정일 사망 전엔 TV와 방송 등을 통해 매일 수백, 수천 번 ‘장군님’이란 단어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단어가 이제는 바뀌게 됐다.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후계자 김정은을 ‘김정은 동지’ ‘청년장군’ ‘대장동지’ 등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통치자가 된 지금은 이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동지는 너무 일반적인 호칭이고, 장군님은 아버지가 선점했고, ‘대장님’은 마적단 두목 이미지가 풍긴다. 현재까지 북한 언론은 김정은을 여전히 ‘동지’로 부른다. 새 호칭 만들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 김정은 지시도 ‘교시-말씀’ 반열에
호칭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선 김일성 김정일의 지시를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존재한다. 김일성의 말은 ‘교시’ 김정일의 말은 ‘말씀’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모든 일을 김 부자의 말에 입각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말’을 의미하는 단어도 매우 중요하다. 어느 종교의식에서든 신의 말씀이 반드시 인용되듯 북한도 모든 회의와 모임 등에서 발언할 때 반드시 교시와 말씀을 먼저 인용해야 한다. 앞으로 김정은의 말도 교시와 말씀의 반열에 올라야 하지만 아직까지 김정은의 말을 의미하는 단어를 어떻게 정할지는 지시가 내려온 바가 없다.
주민들은 ‘초상휘장(배지)’을 의무적으로 가슴에 ‘모시고’ 다녀야 한다. 김일성 사후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이 같이 붙은 배지가 등장했다. 이는 ‘쌍상’ 또는 ‘겹상’으로 불렸다. 주로 고위 간부가 달고 다녔고 장마당에선 비싸게 거래됐다. 쌍상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머잖아 여기에 김정은 초상이 추가된 배지가 나돌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무실과 가정에 걸린 초상화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김정일 생모) 초상화를 통틀어 ‘3대 장군상’이라고 불린다. 머잖아 김정은 초상화가 추가돼 ‘4대 장군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강제동원의 악몽 되살아나나
북한이 김정일의 ‘영생’을 강조함에 따라 ‘영생탑’을 새로 지을지도 관심사다. 김일성 사후 북한 전역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글이 새겨진 영생탑이 경쟁적으로 수천 개나 건설됐다. 간부들은 ‘충성의 돌격대’를 만들어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자재 마련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 착복하기도 했다. 이제 탑을 또 건설한다면 주민들이 기겁할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의 탑에 한 면은 김일성, 다른 면엔 김정일 이름을 넣으면 해결할 수도 있지만 간부들이 돈을 뜯어낼 수 있는 호재를 그냥 넘길지는 의문이다.
○ 내년 1월 8일 ‘선물’ 기대
현재 북한은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과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쇠고 있다. 1월 8일로 알려진 김정은 생일도 머지않아 민족 최대의 명절 반열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생일엔 보위부 등 권력기관 산하 직원들에게 쇠고기 통조림 계란 등의 ‘명절 공급’이 있었다. 김정일 생일 때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당장 내년 1월 8일 뭔가 선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명절이 몇 개 더 늘어날지도 관심사다. 김정일 시대엔 ‘당 중앙위 사업 시작일’(6월 19일), ‘최고사령관 추대일’(12월 24일) 등이 새로 명절로 지정됐다.
북한엔 김정일 동상이 비밀장소에만 2, 3개 있다. 노동신문은 25일 “1999년에 동상 건립 계획을 올린 일꾼들에 장군님이 ‘조국통일과 강성대국 건설 생각밖에 없는데 왜 내가 바라지 않는 동상을 세우려 하느냐’고 호되게 질책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위상을 정당성 확립에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 김정은에겐 김정일 동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 동상은 전국 도시 중심부에 있다. 김정일 동상을 세우기에도 최상의 장소인 셈이다. 두 동상을 나란히 놓을지, 마주 보도록 할지 배열 방식도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 전시할 콘텐츠도 없는데…
북한의 공장 기업소 학교 등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혁명역사연구실이 각각 있다. 교실이 몇 개밖에 없는 시골학교도 가장 좋은 교실 3개에 연구실부터 만들었다. 여기에 김정은 연구실까지 추가하려면 수만 개의 가장 좋은 방을 다시 연구실로 만들어야 한다. 연구실을 꾸리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벽지 주단 유리 등을 최상급으로 쓰지 않으면 충성심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이 돈도 주민들이 부담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거기에 전시할 콘텐츠 문제가 있다. 김정은에게는 내세울 혁명역사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 지도자 서적은 필수 학습서
선전선동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통치자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책은 매우 중요하다. 출판물의 절반 이상이 이런 책인데, 김일성 김정일 관련 도서는 수천 가지나 된다. 김정일 관련 도서는 그가 후계자 신분이던 1970년대부터 김일성 관련 도서와 같은 반열에 올라 수천 종이 출간됐다. 김정일은 선전이론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다. 아직 김정은을 선전하는 책은 한 권도 없다. 주민들이 회의 때 김정은 지시를 인용하려 해도 인용할 어록조차 없다. 김정은 관련 첫 서적은 주민들의 필수 학습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헌법 몰라도 ‘10대 원칙’은 알아야
북한에서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은 사실상 북한을 통치하는 법이다. 헌법은 몰라도 상관없지만 10대 원칙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원칙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외워야 노동당원이 될 수 있다. 10대 원칙은 모든 항목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김정일 시대까지는 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효력이 있었지만 김정은이 아버지도 아닌 할아버지를 내세우면 고리타분한 느낌을 줄 수 있다. 10대 원칙을 수정할 경우 사실상 북한의 법이 달라진다. 주민들도 분량이 적잖은 10대 원칙을 다시 외워야 한다.
○ ‘김정은 동지의 노래’도 등장할 듯
북한에서 회의는 일상생활이다. 각종 회의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의례가 김일성 부자 찬양가를 부르는 것이다. 회의 시작 때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노래’를 1절씩 부르고 끝날 때는 또 ‘만수무강 축원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김정은 등장으로 ‘김정은 동지의 노래’가 언제 나올지, 또 회의할 때마다 노래를 세 곡씩 불러야 하는지도 관심사다. 현재 김일성 초상만 들어가 있는 지폐에 김정일 초상이 들어갈지도 주목된다. 현재 최고액권인 5000원권 위에 김정일 초상이 들어간 1만 원권이 새로 생길 가능성이 높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