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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사랑의 화신

입력 | 2011-12-26 20:00:00


“인민들의 건강까지 헤아리시어 이런 사랑의 조치를 취해 주시니….” 북한 매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의식장 주변에 더운물 매대, 의료초소 같은 편의시설이 새 지도자 김정은의 지시로 차려졌다며 ‘인민적 지도자 띄우기’에 나섰다. 엄동설한임에도 하루 세 번씩 조문을 다녀오지 않으면 사상을 의심받는 곳이 북한이다. 그런데도 조선중앙방송은 “조의식장을 찾은 주민들이 사탕가루 물을 받아들고 커다란 격정에 휩싸여 눈물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진정 그이(김정은)는 사랑의 화신이시라고 시민들은 격정을 토했다”고 전했다.

▷북에서는 지도자의 사랑도 대를 잇는다고 믿는 모양이다. 김정일 역시 북한 매체에 따르면 사랑의 화신이었다. 2005년 노동신문은 불난 집에서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를 먼저 꺼낸 뒤 아내를 구하려다가 숨진 남자를 소개하면서 “김 위원장이 이 소식을 보고받고 온 나라가 알도록 해주시는 은정 깊은 사랑을 베풀었다”고 전했다. 이런 ‘사랑’ 속에 생겨난 북한사람의 ‘충성심’은 우리도 목격한 바 있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때 북한에서 온 ‘미녀 응원단’은 김정일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가 빗속에 방치돼 있다며 끌어안고 통곡했다.

▷당시 북한 출신 배우 겸 가수 김혜영 씨는 어릴 때부터 받은 이념교육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다고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는 “북한에선 집집마다 벽에 붙어있는 스피커에서 종일 선전이 나온다”며 더욱 놀라운 점은 여기엔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정치적 반대만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까지 지배한다는 점에서 “북한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전체주의 국가”라며 크리스토퍼는 북한 주민들의 애도가 진정일 수 있고, 북한은 금방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태어나면서부터 김일성 집안의 ‘사랑 교육’을 받고 산 북한 동포들은 어쩌면 우리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1994년 10월 김일성의 100일 추모제를 마친 뒤 김정일은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김일성이므로 조선민족은 김일성민족이라고 선언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도 연인의 거짓에서 비롯됐음을 깨닫는 순간,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다. 북한의 한민족(韓民族)도 그랬으면 좋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