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권희 논설위원
과학기술외교 경쟁 불붙었다
2010년 한 해 동안 남극 세종과학기지 대장으로 근무했던 강 책임연구원은 “남극에서 러시아 중국 칠레의 연구팀에 진 신세를 이번에 일부 갚았다”고 말했다. 그는 칠레에서 남극을 오갈 때 돈을 내고 칠레 공군기를 탔다. 세종기지 보급품을 운반할 때는 남극기지에 바지선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다. 외국 연구원들이 스키두라는 설상스쿠터로 우리 짐을 날라주는 경우도 많았다. 다행히 1년 전 아라온호가 세종기지를 방문할 때 러시아 중국 기지에 물자 운반 품앗이를 할 수 있었다.
과학기술은 오래전부터 외교의 주요한 수단이었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과학기술외교에 주력해 각국과 맺은 과학기술협정이 수백 개에 이른다. 2000년부터는 국무장관 옆에 과학자(과학기술자문관)를 가까이 두고 외교정책에 과학기술을 반영하고 있다. 배영자 건국대 교수는 “일본은 경제성장기에는 과학기술 습득에 치중하다 1980년대부터 과학기술외교에 나섰다”면서 “작년에는 과학기술력과 공적개발원조(ODA)를 결합하는 전략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두 나라가 이 분야의 양대 축이다.
최근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는 중국은 과학기술협력 강화를 올해 시작된 ‘12차 5개년 과학기술발전계획’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정했다. 아프리카에 위성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해 영농 및 재해예방을 돕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원조사업을 지구촌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수출로 번 달러를 직접 나눠주는 것보다 과학기술로 지원하면 더 잘 먹힌다.
우리 과학기술외교는 시작도 늦고 체계적이지 못하지만 현지에서 인기가 높다. 김석준 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은 “아시아 아프리카 개도국을 가보면 ‘돈을 앞세운 일본 중국은 제국주의 냄새가 나니 한국이 기술지원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김 전 원장은 “보유가치가 크지 않은 녹색기술 특허들을 모아 개도국에 패키지로 지원하면 좋을 것”이라며 “선진국이 출연한 재원을 활용해 개도국들이 필요로 하는 유료 특허를 구입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도국 기술지원 한국이 주도해야
케이팝(K-pop)이 각국 팬들에게 주는 감동이 엄청나다. 왜 음악과 춤뿐이겠는가. 한국의 과학기술도 꼭 필요한 곳에 가면 한류(韓流)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은 한국 경제발전 모델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미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아라온호처럼 정부가 직접 나설 게 아니라 산업계와 연구기관들이 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