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문 정국 끝… 물밑 외교전 본격화
90도 인사로 마지막 참배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영결식 하루 전인 27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에 허리를 90도로 숙여 참배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방송 연합뉴스
○ 김정은의 향후 행보?
김정은은 무엇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로서 필요한 직함을 확보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식적으로 갖고 있는 직함이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인민군 대장밖에 없는 그로서는 이런 약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김정은이 곧바로 군 최고사령관에 이어 당 총비서에 임명되는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르면 내년 1월 1일 최고사령관에 오르고, 김정일 생일(2월 16일)이나 김일성 생일(4월 15일)을 전후해 당 총비서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최고위직 자리를 확보한 뒤에는 당분간 ‘유훈 통치’를 앞세워 기존의 정책을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20년 전에 공식 후계자가 된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의 ‘제왕학’ 수업은 1년 2개월여에 그친다. 국정운영의 경험이 없고 권력기반도 취약한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정보원도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직을 조기에 승계할 가능성이 높고 유훈통치를 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지도체제에 대해서는 “얼마 동안 집단지도체제로 가겠지만 (결국은 김정은) 단일지도체제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후견인인 고모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사실상 섭정을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 ‘시나리오 외교’ 고심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를 가늠해 볼 첫 시험대는 22일로 예정됐다가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갑자기 중단된 제3차 북-미 대화다. 전문가들은 1994년 김 주석의 사망 이후 북-미 핵 협상이 한 달 만에 재개된 점을 들어 1월 중 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북한이 돌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 주에는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한중일 3국 순방에 나선다. 국무부 고위인사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동북아시아 주요 국가 순방에 나서는 첫 행보다. 이어 내년 1월 16일경에는 한미일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워싱턴에서 만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여러 변수가 생긴 만큼 북한이 제스처를 취하기 전에 미리 여러 시나리오별로 대응책을 논의해 두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북한이 기존 협상의 연장선에서 이를 재개하는 경우 △군부 중심 세력이 강경으로 선회해 요구 수위를 높이는 경우 △내부 권력투쟁으로 인해 장기간 침묵할 경우 △3차 핵실험 등 도발에 나설 경우 등이 있다. 내년에는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대선을 치르면서 국내 정치적 변수까지 추가된 상황이다.
한미 양국은 이런 시나리오들에 따른 맞춤형 대응 전략을 논의할 계획이다. 우선은 북한을 압박하기보다는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집중 협의하고 있다. 특히 대화 재개에 청신호가 켜지는 경우에도 시기적으로 단, 중, 장기 대책을 마련해 대응한다는 방침 아래 구체적인 공조 방안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향후 한반도 정세를 놓고 동맹국들이 긴밀히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앞으로 숨 가쁘게 전개될 외교전에서 한국이 중심을 잘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