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철학자
왕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고맙구려. 어느 분인지 제가 마련한 잔치를 정말로 흥겹게 여기셨나 보오. 제 첩이 지금 괜한 앙탈을 부려 연회를 망치려고 하니 기분이 좋지 않소. 여러 신하와 장수들은 갓끈을 끊어주시오. 그리고 다시 불을 켜고 연회를 계속하도록 합시다.”
불행히도 왕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다. 단기필마로 적병의 추적을 피할 수밖에 없는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가 그에게 찾아든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 어느 장수 하나가 거칠게 말을 몰고 와서 왕을 호위하며 적병과 맞서 싸웠다. 이 장수는 누구일까. 바로 연회가 있던 날 밤 왕의 애첩에게 입술을 댔던 장수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장수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을 구했던 것일까. 죽음의 위기에 빠진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절영지회(絶纓之會)라고 알려진 고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존경받고자 한다. 군주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거나 사장이나 과장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거나 아니면 경제 활동을 담당하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것은 무척 불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고? 일등이 되는 데 실패하면, 권력을 상실하면, 사장이나 과장의 직위에서 물러난다면 혹은 경제 활동을 더 할 수 없다면, 사랑은 철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이런 상황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 전개된다고 할지라도,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기 때문에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신이 가진 학력, 돈, 직위 등은 타인으로 하여금 몸을 숙이도록 만든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타인의 몸만을 가지는 방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 혹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타인의 마음 아닌가. 마음만 얻으면 몸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바로 동양 사람들의 오래된 지혜, 즉 마음을 얻는 방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바로 덕(德)이다. 한비자(韓非子·기원전 280?∼기원전 233)는 덕을 득(得), 즉 “얻는다”는 의미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무엇을 얻는다는 말일까. 덕이란 글자를 분해하여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덕(德)은 얻는다는 의미의 득(得)이란 글자와 마음을 의미하는 심(心)이란 글자가 합쳐져 있다. 결국 덕은 타인의 마음을 얻는 능력인 셈이다. 이제 문제는 간단해진다. 덕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사랑이 가장 필요할 때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랑을 고스란히 사랑을 준 사람에게 돌려주는 법이다. 바로 이것이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이 아내이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후배이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덕이란 개념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타인의 마음을 얻으려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 오직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줄 뿐이다. 타인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 혹은 타인이 목숨처럼 필요로 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다. 2012년이 시작되는 지금,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아로새겨야 한다. 사랑만이 사랑을 부를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이다.
강신주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