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 스님 입적 1932∼2012한국불교 대표적 學僧
2009년 지관 스님이 동자승들의 얘기를 듣다 파안대소하고 있다. 스님은 원로로서 흔들리는 종단의 기틀을 바로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계종 제공
2일 입적한 지관 스님은 지난해 9월 입원 직전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는지 원고지에 친필로 ‘사세(辭世)를 앞두고’라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스님은 2009년 총무원장 임기를 마칠 때에는 “40리 가는 표를 샀는데 가다 보니 내릴 정거장이 되어서 내리는 것뿐”이라며 “팥을 솥에 넣고 삶으면 팥죽도 되고 앙꼬도 되지만 팥은 그 솥에 그대로 있고 모양만 변하는 것일 뿐이듯이, 슬플 것도 없고 기쁠 것도 없다”고 했다. 조계종의 대표적 학승(學僧)이자 명리에 연연하지 않아 종단 안팎에서 신망이 높았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수행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도 있다. 출가 초반 경남 양산 통도사 극락전에서 경(經) 율(律) 선(禪)이라고 쓴 석 장의 종이를 놓고 매일 108배를 올리며 무엇을 할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기도 끝에 마음을 다잡고 종이 한 장을 뽑았을 때 손에 잡힌 것은 ‘선’이었다. 그럼에도 스님은 공부가 좋아 이후에도 ‘경’의 길을 걸어 종단의 대표적인 학승이 됐다.
금석문에 조예가 깊어 한국불교와 관련한 비는 대부분 스님이 역주했으며 직접 조성한 비도 20개가 넘는다. 총무원장에 재임하고 있을 때 주석처인 서울 경국사에서 승용차 없이 버스나 도보로 출퇴근하며 고승들의 행적을 밝힌 ‘역대고승비문총서’ ‘한국불교문화사상사’를 출간했다.
지난해 9월 지관 스님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 친필로 원고지에 남긴 임종게. 조계종 제공
학승이면서도 스님은 해인사 주지와 중앙종회 부의장을 지내는 등 이른바 종단의 행정을 담당하는 ‘사판(事判)’의 세계에도 밝았다. 1994년 개혁 종단 출범 이후 4년의 임기를 채우고 평화롭게 종권을 이양한 첫 번째 총무원장이었다. 당시 조계종은 1994, 98년 종권을 둘러싼 잇따른 폭력 사태로 위신이 땅에 떨어진 가운데 총무원장을 지낸 정대 스님과 현직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잇따라 입적하는 바람에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2008년 정부의 종교 편향 시비가 이는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범불교도 대회를 개최해 불교계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무렵 ‘인평불어 수평불류(人平不語 水平不流·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면 사람도 말이 없고, 물도 평탄함을 만나면 조용히 머문다)’라는 스님의 말은 세간에 화제가 됐다. 2009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명(碑銘)을 직접 쓰기도 했다.
스님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1982년부터 시작한 불교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 출간이다. 사전 조사만 10여 년이 걸렸고 현재 12권까지 출간됐다. 곧 13권이 출간될 예정이며, 스님은 총 20권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무원장 퇴임 무렵 조계사 경내에 조성한 8각10층 세존사리탑 발원문은 그 염원을 잘 보여 준다.
“우리 국민 모두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아끼고 섬기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진행하는 가산불교대사림이 생전에 완간되어 부처님께 헌상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뜻은 이제 후학의 손을 기다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