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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빛과 소금으로]낙도선교회의 ‘복음 등대호 1호’

입력 | 2012-01-06 03:00:00

사랑의 연락선에 치약 과자 사탕 ‘한 바구니’ - 희망 ‘한 꾸러미’




복음등대호 1호가 3일 오후 전남 완도군 소안면 구도 선착장에 닿았다. 낙도선교회 이상현 목사와 일행은 가스통과 생필품 등을 부지런히 섬 안쪽으로 날랐다. 배는 가벼운 풍랑에도 흔들릴 정도로 작았지만 조그마한 섬들을 다니며 길어낸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랑게, 요고 하나 잡솨보쇼잉.” 낙도선교회 이상현 목사(오른쪽)와 구도교회 장명견 목사(왼쪽)가 3일 오후 구도 주민 추지병 씨와 환담하고 있다.

대형 교회 송구영신 예배의 휘황한 불빛과 들뜬 얼굴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쓸려간 3일 새벽, 한반도의 남쪽 끝을 향해 달렸다. 엄동의 어둡고 찬 새벽 공기를 고속열차와 시외버스를 갈아타며 쉼 없이 갈랐지만 점심시간을 넘겨서야 전남 완도군 완도읍 망석리 완도한빛교회(예장 합동 교단)에 닿았다.

이상현 담임목사(52)는 작은 승합차에 이미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잔뜩 싣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완도군 소안면 구도(鳩島)로 갑니다. 작은 섬이죠. 선착장에서 배 타고 50∼60분이면 닿습니다.”

승합차를 얻어 타고 선착장에 도착하자 정박 중인 배들 사이에서도 유달리 작은 ‘복음등대호 1호’가 눈에 띄었다. 7.9t급인 이 배는 길이 12m, 폭 3m에 불과했다. 이 목사와 부인 박금숙 씨(49), 김영희 집사(60), 완도장로교회 이순종 목사(51), 완도순복음중앙교회 최준 집사(61)를 포함해 8명이 좁은 선실에 모여 앉으니 서로 무릎이 닿을 듯했다. 선실 한쪽에 정돈된 박스를 열자 칫솔과 치약, 과자, 사탕, 떡 등이 가득 차 있었다. 곧 배가 출발했다.

이상현 목사가 소속된 낙도선교회(대표 박원희 목사)는 1984년, 총신대 신학생들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선교단체다. 종교 시설은 물론이고 현대 문명의 이기와도 거리가 먼 전국 430여 개의 낙도를 사랑으로 보듬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선교회의 모토는 ‘세계는 섬이다’.

선교회에서 완도 지역을 아우르는 이 목사와 일행은 허우도, 다랑도, 원도, 금일장도, 대정원도 등 25곳에 이르는 작은 섬들을 돈다. 매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복음등대호에 올라 두세 군데씩 섬을 순회한다.

2008년 서울 한 교회의 도움으로 장만한 복음등대호가 이들의 발이 됐다. 배가 생기면서 섬사람 돕기도 단순한 물자 공급과 잔일 돕기에서 이·미용 봉사, 치과 진료, 침술 봉사로 폭이 넓어졌다.

완도는 이제 육지와 다리로 연결돼 뭍과 다름없는 섬이 됐지만 주변의 부속 도서는 여전히 하루에 몇 번 정도만 운항되는 연락선으로 땅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복어에 중독된 낙도 주민이 빠른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숨지기도 했습니다. 안타깝죠.”

한 시간쯤 바다에 몸을 맡기자 구도에 도착했다. 면적 0.39km², 해안선 길이 24km에 불과한 작은 섬. 구도교회의 장명견 목사(59)가 복음등대호 일행을 마중 나왔다. 인터넷이 개통된 지 2년밖에 안 된 이곳에는 현재 거주하는 60명 정도의 주민 중 절반 이상이 70대 이상이다. “학교가 없어진 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아이들은 배 타고 근처 소안도로 등교하죠.”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일행은 근처 민가로 가 주민 추지병 씨(86)를 만났다. “그랑게, 요고 하나 잡솨보쇼잉.” 일행이 가져간 요구르트를 따 살갑게 건네자 추 씨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목사님이랑 손님들 오시먼 감사하고 반갑지. 이것저것 다 도와주시고잉.”(추 씨)

또 다른 주민 이명심 씨(82·여) 집으로 향했다. “자식들 온 거마냥 겁나게 든든하구먼. 가스통 오지게 무건 거 날라주고 쌀도 메다 주고 말로 다 못해.” 이 씨가 고마워하자 구도교회 장 목사도 웃었다. “서울에 큰 교회들은 화려하고 큰 행사도 한다지만 여기서 주민들과 엉겨 사는 보람에는 비할 바 아니죠. 처음에는 선교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가족이 돼 버렸어요.”

오후 3시 반쯤부터 비바람이 불더니 풍랑이 거칠어졌다. 복음등대호에 다시 올랐다. 사나운 풍랑에 작은 배가 흔들리자 일행이 따뜻한 감잎차 한 잔을 건넸다. “저희도 첨엔 귀 밑에 멀미약 붙이고 다녔는데 몇 달 있다 약속한 듯 멀미약을 뗐죠. 저희야 이제 보람과 재미로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아요. 섬 주민들께 제대로 된 의료 진료도 해드리고 싶고, 완도에 가끔 나오시면 목욕하고 쉬다 가실 수 있게 쉼터도 만들어드리고 싶고, 배도 더 늘리고 싶고….” 낙도선교회 본부와 대도시 교회들에서 오는 지원금이나 물품이 있긴 하지만 지금의 활동을 겨우 이어갈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저도 신문에서 ‘다시 빛과 소금으로’ 시리즈 봤습니다. 큰 교회에서 큰일들 많이 하시는데, 글쎄, 저희처럼 내세울 거 없는 사람들도 기삿거리가 되나요?” 이 목사의 얼굴이 섬사람들처럼 붉어졌다.

완도=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이상현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심성섭 목사 ▼

섬마을 주민과 동고동락… 온몸으로 복음 전해

‘다랑도 섬 선교교회’ 심성섭 목사(64)는 미국 뉴욕에서 치과 기공사를 했다. 당시 수입이 썩 좋은 직업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내려놓고 신학 공부를 한 뒤 귀국해 전남 완도군 금일읍의 작은 섬 다랑도에 오셔서 섬 목회를 한다. 60대의 나이지만 심 목사님은 마을 주민들의 바닷일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돕는다. 지난번에 복음등대호로 다랑도를 찾았을 때, 그는 상자에 멸치 담는 일을 마을 주민 못지않게 잘하고 있었다. 다랑도 교회를 리모델링할 때도 우리 선교회원들이 하루 도와줬다. 도와주기가 무색할 정도로 심 목사는 일을 혼자서 거의 다 하다시피 했다. 뭍의 화려한 영예를 등지고 이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심 목사를 볼 때마다 늘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