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이형삼]잔 다르크 마케팅

입력 | 2012-01-07 03:00:00


학력위조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 씨의 e메일 ID는 ‘shindarc’였다.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해낸 여걸 잔 다르크와 자신의 성(姓)을 합성해 한국 미술계의 구원자를 자처한 듯하다. 탄핵 역풍으로 침몰 직전이던 한나라당이 2004년 총선과 재·보선에서 기사회생하자 당시 천막당사를 이끌던 박근혜 대표에겐 ‘박 다르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세대 대권주자로 꼽은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당찬 성격 때문에 ‘추 다르크’로 불렸다. 추 의원은 1997년 대선 때 고향 대구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잔 다르크 유세단’을 조직한 적도 있다.

▷한국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잔 다르크가 본고장 프랑스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당장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 우파 후보들이 ‘잔 다르크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잔 다르크 탄생 600주년인 오늘 파리의 잔 다르크 동상 앞에서 성대한 축하 집회를 연다. 이에 질세라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잔 다르크가 태어난 마을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 참석한다.

▷지지율 2위의 사르코지는 3위 르펜이 바짝 따라붙자 초조해하고 있다. 재정 위기와 대선자금 스캔들로 사르코지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반면에 르펜은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원조(元祖) 극우 노선에서 탈피해 ‘유연한 보수’ 전략으로 점수를 얻고 있다. 좌파 진영의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지지율 1위로 느긋하게 우파의 내부 싸움을 즐기고 있다. 좌파와 우파는 1789년 프랑스 혁명 후 급진파 자코뱅당이 의회의 왼쪽에, 온건파 지롱드당이 오른쪽에 앉은 데서 비롯됐다. 15세기 인물인 잔 다르크에게는 좌우 개념조차 없었을 것이다.

▷용맹한 전사(戰士) 이미지와는 달리 잔 다르크는 법정에서 “칼과 창을 휘두르기보다 주로 깃발을 들고 병사들을 독려했다”고 밝혔다. 그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 중에도 전투 장면보다는 단아한 자태를 그린 게 많다. 잔 다르크를 굳이 마녀로 몰아 처형한 것은 ‘여자인 주제에 감히’ 신의 계시로 전장에 나왔다고 한 그를 괘씸하게 여겨서인 듯하다. 잔 다르크 덕에 프랑스 왕이 된 샤를 7세는 그를 구할 수 있었지만 끝내 외면했다. 그가 너무 위대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위인은 편견과 배신의 희생자가 되기 쉬운 건가.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