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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믿는 선거비용 신고… ‘錢大’ 알면서 고칠 생각 안했다

입력 | 2012-01-07 03:00:00

정당선거는 ‘치외법권 지대’… 허위신고해도 조사 못해
한나라 “선거공영제 도입”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제기한 전당대회 금품 살포 의혹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선 놀라는 사람이 드물다. 오히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돈봉투’가 당내 선거에서 오랜 관행처럼 굳어져온 탓이다. 그만큼 이제는 제도를 뜯어고칠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 선거는 지금까지 정당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치외법권’ 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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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맞추기 신고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정치자금을 1억5000만 원까지 추가로 모금할 수 있다. 그 대신 전당대회가 끝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수입과 지출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신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엿장수 맘대로’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2008년 7·3전대에서 허태열 전 최고위원은 1억7981만 원을 썼다고 신고한 반면 정몽준 전 대표가 신고한 지출금액은 1660만 원에 불과했다. 안상수 전 대표는 2010년 7·14전대 당시 1억4950만 원을 지출했다고 했지만 나경원 전 최고위원의 지출금액은 2790만 원이었다.

이렇다 보니 선관위에 신고한 지출금액을 실제 선거비용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부 지출내용을 봐도 선거를 치르면 당연히 쓸 수밖에 없는 교통비나 주유비, 식대, 숙박비 등을 전혀 쓰지 않았다고 신고한 캠프가 수두룩하다. ‘짜 맞추기 신고’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뒤늦게 제도 개선 나서

당내 선거가 금권선거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그만큼 회계처리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선관위에 허위로 신고한다 해도 선관위는 일반 선거와 달리 당내 선거에 대해 조사권이 없다. 2006년 선관위는 당내 선거에 대해서도 조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당법 개정을 요청했지만 국회는 정당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지난해에도 선관위는 당 대표 경선 후보자들이 회계보고를 할 때 소속 정당에서라도 감사를 받도록 하자는 법 개정 의견을 냈으나 국회에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자신들의 발에 스스로 족쇄를 채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 선거에서는 선거사무장이나 운동원들에게 일정 금액의 수당을 지급할 수 있으나 당내 선거를 규정한 정당법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공직선거에서처럼 돈을 받은 사람이 선관위에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당내 선거에서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수사 의뢰’란 강수를 던진 한나라당은 뒤늦게 제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내 선거비용을 당 차원에서 지원하는 선거공영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출내용도 당에서 직접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당내 선거를 아예 선관위에 위탁하거나 당 윤리위원을 모두 외부에서 영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