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160×47cm
스키타이 고분의 꼭대기에 석인을 세워놓은 것이 더러 발견된다. 두꺼운 목걸이를 하고 한쪽 손에는 뿔잔을 든 것, 활과 화살 또는 칼과 도끼로 무장한 것도 있다. 남근을 노출한 석인도 있다. 스키타이 전기 석인은 그 자체가 남근 모양을 하고 있다. 석인이 고분에 묻힌 사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부족 남성이 지닌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후기에는 사실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면서 특정 족장이나 왕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조각했다.
스키타이 고분은 봉분으로 돼 있다. 시베리아 남부 아르잔 쿠르간에서 발굴된 지름 120m짜리 고분에서는 장례식에 쓰인 말 300여 마리의 잔해가 발견됐다. 화려한 장식을 하고 털옷을 입은 남녀가 중앙에 매장돼 있었다. 남자 15명, 금과 은으로 장식한 양탄자, 무기와 조각품도 함께 출토됐다. 고고학자들은 스키타이 문명이 당시 실질적인 왕국을 건설할 충분한 힘을 갖췄던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