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정은 씨의 ‘경이적인 재능’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3세 때 ‘광명성 찬가’라는 한시(漢詩)를 붓으로 옮겨 쓸 정도로 천재 꼬마였다고 한다. ‘백두산 정상, 정일 봉우리(白頭山頂 正日峰)’로 시작되는 이 시는 건국자인 김일성 주석이 아들에게 하사한 것으로, ‘광명성’은 김정일 위원장을 의미한다. 게다가 간자체(간단히 변형시킨 한자)로 쓰인 시를 세 살배기 꼬마가 정규 한자인 번자체로 바꿔 썼을 정도라니 마법의 손이라도 가졌던 모양이다. 새로운 ‘정은 신화’는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질 것 같다.
지난해 여름 필자가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미디어 관련 중요 인사와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일본의 총리에 세습 의원이 많은 것을 화제 삼아 “좀 문제가 있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말씀 그대로입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중국 옆에는 더 심각한 세습 국가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대꾸하자, 그는 “사실은 그것도 곤혹스러운 일”이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사회주의 국가에 세습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북한이 혼란스러워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중국은 판단한 것 같다.
日서 조선왕조 드라마 인기
식민지 해방 이후 한반도의 북쪽은 예전의 왕조국가로 되돌아갔다고 해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소련이나 중국의 후원으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인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캄보디아 혁명 후 시아누크 국왕을 오랫동안 숨겨준 이도 김일성 주석이었다.
지금 일본에서 방영 중인 ‘이산’과 같은 조선 왕조 영화나 드라마도 다른 차원에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산은 조선 왕조의 위대한 왕 중 하나인 정조가 되지만 왕위 계승은 조정의 최대 관심사였다. 왕족과 중신 사이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권모술수와 음모가 소용돌이쳤다. 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왕비 등 여성들이었다. 김씨 왕조도 창건 이래 이와 비슷한 드라마의 연속이지 않았던가.
김 주석이 태어나 자랄 무렵이 일제시대였으니 그는 직접 일본의 천황제국가를 체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천황은 현재는 물론이고 그 당시에도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에 반해 김씨 왕조의 왕들은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였다. 헌법이 있다고 해도 창건자인 김 주석에 대한 칭찬투성이인 서문을 보노라면 이것은 입헌군주제라기보다는 절대왕조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짐은 곧 국가다’라고 말한 부르봉 왕조의 루이14세가 생각날 정도다.
드라마 속 이산은 측근을 이용하거나 자신이 직접 몰래 조정 밖으로 나가 인민의 생활을 살펴보고 그 시선에서 국정개혁에 착수했다. 민심을 잡았기에 자신 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산을 제작한 이병훈 감독은 “국가의 지도자가 위대한지 아닌지에 따라 국민의 행복이 결정된다. 그것을 드라마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어쩌면 북한의 지도자에게야말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주인공 따라하면 배울 점 많아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만큼 정은 씨에게는 개혁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적지 않다. 이것이 오히려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산이 그랬던 것처럼 개혁을 추진하면 기득권을 침해받은 중신들의 반발을 불러 왕의 실각을 노리는 음모로 이어질 수 있다. 후견인 장성택과 김경희 부부가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음은 틀림없다.
중국처럼 개혁개방이 진행되면 왕조 그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그것이 최대의 딜레마이기는 하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도 적어도 지금은 김씨 왕조의 붕괴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기에 따라서는 이들 국가가 큰 원조를 할 수도 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