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커피사
은수저와 첫인사를 나누던 순간, 벅찬 가슴으로 한참을 넋 놓고 앉아 있었다. 촘촘히 고운 무늬가 새겨진 비단 주머니 속에서, 다시 여러 겹의 고운 한지에 싸여 있던 은수저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해서인지 창백해 보였다. 하지만 푸름이 짙어 차라리 단아했다. 지금도 우리 민족의 귀한 유물인 은수저를 들여다볼 때면 커피의 원류를 찾아가는 서툴고 더딘 발걸음이 조급해진다.
이 은수저를 썼던 고종황제는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마신 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종황제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처음 마셨다는 것이다. 이후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정관헌(靜觀軒)이란 서양식 건물에서 외교사절들과 함께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최근에는 정관헌에서 커피 관련 행사가 많이 열린다.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현재 회자되는 고종황제의 커피 이야기에는 사실과 다른 점도 있다.
○ 천문학자 로웰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필자가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커피 관련 기록을 남긴 이는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1855∼1916)이다. 동양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일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 11명)을 미국으로 수행하고 안내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해 12월에는 노고를 치하하는 왕실의 초청을 받아 겨울 동안 조선에 머물게 됐다. 조선의 정치와 풍속,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자세히 기록했던 그는 이후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u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책을 펴내 조선을 서구에 알렸다.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1885년에 펴낸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제공
그는 커피가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따르면 1884년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조선에서 커피가 유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은둔의 나라였다. 세계가 우리를 알 수 없었던 것만큼 우리도 세계를 몰랐다. 하지만 조선은 이미 서양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근대의 세계로 서서히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서구문물에 일찍 눈을 뜬 고관대작들이나 세도가들, 외국을 빈번히 드나드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커피가 널리 퍼져 있었다는 이야기다.
○ 이어지는 커피의 기록들
고종황제의 어진(위)과 그가 커피를 마실 때 직접 사용했다는 은수저(아래).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제공
이렇듯 개항기 조선을 묘사한 서양인의 기록에는 이미 커피가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그들은 단순한 여행객을 비롯해 선교사, 외교관,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이들과의 활발한 교류는 적지 않은 기록물들을 남겼다.
물밀듯 밀려드는 외세 앞에서 숙명적으로 서구문물을 받아들여야 했던 고종 황제의 커피사랑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도 없이 ‘고종 황제가 최초로 커피를 마신 인물’이라느니, ‘그 장소가 러시아 공사관이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더는 정설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는 유럽인 천주교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1830년대 즈음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기록을 찾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새 커피는 우리 국민 누구나 하루 한두 잔씩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기는 대중음료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작 이 커피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졌는지, 누구에 의해 전해졌는지, 어떤 곳에서 널리 마시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지 못하다. 커피는 더는 서양에서 온 남의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와 함께해온 역사만 해도 130년에 가까운, 귀한 문화적 산물이다. 커피와 관련한 역사 기록을 지금부터라도 꼼꼼히 정리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drmah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