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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DO IT/기자체험시리즈]평창 향한 질주, 알파인스키 회전경기

입력 | 2012-01-14 03:00:00

겨우 폴 5개 통과했는데 무릎 찌릿




알파인스키 회전경기에 도전하는 본보 조동주 기자(오른쪽)를 보고 국가대표 김선주가 웃음을 참지 못하며 자세를 지적하고 있다. 변종문 국가대표팀 감독이 직접 폴을 설치했다. 김선주의 지도 이후 눈에 띄게 조 기자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아저씨, 그렇게 타면 안 돼요.”

6세 꼬마 숙녀는 낑낑대는 26세 기자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눈 언덕을 질주했다. ‘너 두고 보자.’ 기자는 이를 악물고 스키폴을 휘둘렀지만 50m도 못 가 눈밭을 굴렀다. 9일 경기 이천시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 곧 겪을 일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날 기자는 알파인스키 국가대표팀을 만나 회전경기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도전에 앞서 혼자 스키 연습을 하다 선수가 아니라 지나가던 꼬마에게조차 망신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변종문 알파인스키 국가대표팀 감독(36)이 “폴(깃대) 몇 개로 하실래요? 3개?”라고 물었을 때 기자는 호기롭게 “20개는 놔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받아쳤다. 옆에 있던 여자 국가대표 김선주(27)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기자를 바라봤다. 결국 폴 5개로 합의했다.

알파인스키 회전경기는 폴을 세워 만든 기문 사이를 통과하는 경기다. 폴 사이의 거리는 13m까지 허용된다. 변 감독은 길이 48m의 코스에 12m 간격으로 폴 5개를 세웠다.

기자가 TV에서 본 회전경기에선 모든 선수들이 폴을 치면서 내려갔다. 꼭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몸은 폴과 멀었지만 팔을 뻗어 일부러 폴을 치면서 내려갔다. “깔깔깔.” 어디선가 들리는 웃음소리. “그냥 치지 말고 내려와요.” 김선주였다. 변 감독은 “최대한 빠르게 내려오려면 폴에 최대한 가깝게 붙어야 하니까 몸이 폴에 부딪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깥 다리에 힘을 줘야 빠른 속도에서도 날카롭게 회전할 수 있다. 다리에 계속 힘을 주니 폴 5개를 지나는데도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변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들은 거의 매일 50개가 넘는 폴 사이를 질주한다”고 했다.

몇 차례 타니 회전속도가 빨라짐을 느꼈다. 이날 기자의 최고기록은 8.62초. 김선주에게 “이제 붙어볼 만하다”고 배짱을 부렸다. 김선주는 살며시 웃더니 바람같이 내려왔다. 5.97초. 역시 지난해 겨울아시아경기 2관왕다웠다.

눈이 오지 않는 계절에 한국 대표팀은 대부분의 시간을 ‘체력훈련’으로 보낸다. 이 기간에 눈이 있는 곳에서 충분한 훈련을 하려면 제 돈 주고 해외로 가는 수밖에 없다. 김선주 역시 지난해 겨울아시아경기를 앞두고 자비 1000만 원을 들여 뉴질랜드와 미국에 다녀왔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후 대한체육회는 작년까지 20일씩 1회만 지원했던 해외 전지훈련을 올해 30일씩 3회로 늘렸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일본은 여름마다 만년설이 있는 오스트리아에 국가대표 A팀을 상주시킨다.

현재 국내 알파인스키 선수는 368명(남 265, 여 103명). 이 중 실업팀에 소속된 선수는 23명뿐이다. 실업팀은 하이원, 평창군청, 경기도체육회 등 3곳밖에 없다. 나머지 345명은 스키로 돈 한 푼 벌지 못한다. 전업 선수가 생길 수 없는 구조다. 현실이 이런데 선수들이 스키를 타는 이유는 뭘까. 김선주는 당차게 말했다. “스키는 마약 같아요. 끊으려 해봤지만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요.”

이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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