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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권지예의 그림 읽기]송아지는 누가 키워?

입력 | 2012-01-14 03:00:00


갓난 송아지, 장 프랑수아 밀레. 아트블루 제공

옛날 흑백TV 시절에 ‘웃으면 복이 와요’란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 이기동이라는 코미디언이 돈 많은 속물 행세를 하며 으스대는 코너가 있었죠. 어느 날인가 그가 아주 잘난 척하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시켜먹는 장면이 나왔어요. 한껏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접시 위의 ‘고기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썰고 그 조각을 집어먹는 장면에 어린 저는 매료되었죠. ‘스테이크’란 음식의 맛은커녕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저는 그 음식을 상상하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에 우리 집은 더운 여름날 점심에 가끔 수제비를 해먹었는데 저는 수제비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에 아주 넓고 큰 수제비 반죽을 만들어 달라고 어머니께 부탁했죠. 그 수제비를 건져 접시에 담아 이기동 씨의 흉내를 내면서 스테이크를 상상하며 먹기 시작했죠. 으음∼ 바로 이 맛이야!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맛있는 스테이크!

밀가루 스테이크를 먹던 소녀는 자라서 스테이크는 밀가루가 아니라 질 좋은 쇠고기 살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척 비싸다는 것도요. 쇠고기야 원래 비싸서 어린 시절에는 국이나 끓여 먹었는데 언제부턴가는 모두들 구이로도 많이 먹게 되었죠. 그래도 요즘 한우의 가격은 늘 비싸서 식구들이 마음껏 먹는 게 여간 큰 부담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식당에 가서 한우 갈비나 등심구이를 온 식구가 마음껏 먹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게 비싼 한우가 요즘 ‘똥값’이라는군요. 송아지 한 마리가 돈 1만 원에도 팔리지 않는 현실에 아예 굶기거나 도살처분을 해야 할 판이랍니다. 갓난 송아지를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한다고 축산농민들이 큰 한숨을 짓더군요.

소 한 마리가 큰 재산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제가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당분간 월급을 모아 소를 사자고 하셨습니다. 시골에 있는 친척에게 소를 맡겨 키워 새끼도 치고, 그러면 은행이자는 새발의 피라고 하셨어요. 친척도 좋고 우리도 좋은 그 생색나는 일에 저는 투자를 했고, 시집갈 밑천에 보탠 경험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소 팔아 시집갔죠. 그만큼 소는 귀한 존재였고 송아지는 미래 투자 가치가 높은 투자 종목이었습니다. 프랑스 요리에는 송아지 요리가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송아지 요리가 없는 게 이상했는데, 송아지를 돈 되게 키워야지 잡아먹을 이유가 없어서였나 봐요. 그런데 이제 송아지는 누가 키우나요?

농가에서 송아지가 태어나는 것은 큰 기쁨이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바르비종의 농민화가 밀레는 갓 태어난 송아지를 짚단 침대에 실어 옮기는 모습을 그렸네요. 어미 소가 새끼를 핥아주고 아낙네는 수고한 어미소의 잔등을 쓸어주고 있는 듯합니다. 집 앞에서 구경하는 꼬마들은 호기심이 가득하고 갓난 송아지를 옮기는 두 농부의 자세도 경건해 보이는군요.

송아지도 목숨 붙은 생명이고 태어났으면 제 목숨 값을 해야 할 텐데, 태어나자마자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가 되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아니 막말로 고기 값이라도 받아야 할 텐데. 그런데 식당의 한우 1인분 가격이 살아 있는 송아지 값의 3배라니! 도대체 접시에 담은 쇠고기 살과 살아 있는 송아지 한 마리의 값이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건지. 안타깝고도 화가 납니다. 설 명절 대목을 맞아 전시된 비싼 정육선물세트를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순진무구한 송아지의 눈망울이 어른거리네요.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