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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고기정]北 희토류 광산과 돼지고기 한 덩이

입력 | 2012-01-16 03:00:00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기자 선생, 한국기업 한 곳 소개해 주시오. 잘되면 사례도 하겠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장례기간이던 지난해 12월 하순의 북-중 접경도시 단둥(丹東). 송 사장이라고 밝힌 50대 조선족 무역상은 바이주(白酒) 몇 잔이 돌자 불쑥 이렇게 말했다. 북한통이라고 해서 그쪽 소식 좀 들으려 저녁까지 샀더니 난데없이 민원을 해댔다.

‘갑자기 웬 한국기업이냐’고 물었더니 송 씨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내가 무역상이지만 실은 무역 자체는 돈이 잘 안 벌리오. 지금 이쪽은 조선(북한) 희토류 먹겠다고 난리가 났소. 내가 조선 드나드는 것도 베이징(北京)이나 선양(瀋陽)에서 희토류 광산을 알아봐 달라고 해서요.”

그러면서 그는 “한국은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던데 기회가 생길 것도 같소. 영도자가 바뀌지 않소”라며 “돈 좀 있는 기업 소개시켜주면 내가 한번 열심히 뛰어보리다”라고 했다. 남한 자본으로 금광이나 다름없다는 북한 희토류 광산의 개발권을 따내자는 제안이었다. 그러고 보니 단둥해관(海關·세관) 맞은편의 무역상 사무실 중에 ‘시투(稀土·희토)’를 취급한다는 곳이 적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송 씨는 헤어지면서 “우리가 조선족이라고는 해도 실은 중국인인데, 중국 사람이 김정일 죽었다고 해서 무슨 관심이 있겠소. 돈 벌 게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지”라고 툭 내뱉었다.

다음 날 오후 해관 근처의 한 청과물가게. 과일 말고도 북한으로 가는 물건을 많이 다룬다기에 들렀더니 개점휴업이었다. 장례기간에는 조화 말고는 일반 물품이 못 들어간단다. 그런데 가게 한 귀퉁이에 채 포장이 덜 된 돼지고기 한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족히 스무 근은 돼 보였다.

상점 주인은 “북한으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방금 조화 빼고는 통관이 안 된다고 해놓고선 무슨 소리냐’고 묻자 “지도원 선생(트럭 운전사 옆에 타는 사람)이 직접 들고 갈 물건이다. 윗선에서 누가 가져오라고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상점 주인이 말한 ‘윗선’은 중국이 아니면 고기를 들여올 곳이 없었으리라. 이 와중에도 고기가 너무 당겨 도저히 참을 수 없었거나, 아니면 고기를 다른 곳에 팔아 쏠쏠한 이윤을 남기려고 한 듯했다.

단둥에서 본 북한과 중국 관계는 사막처럼 건조했다. 시내 중심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는 아직도 6·25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부서진 압록강철교가 파손된 채로 보존돼 있다. 양국의 혈맹을 상징하는 곳이다. 하지만 전후 60여 년이 지난 지금 단둥의 중국인에게 북한은 그저 외국일 뿐이다. 단둥에 나와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중국은 돈 좀 만질 수 있는 곳에 불과하다. 양측 간에 피를 나눈 동지적 감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 북한은 김정은 시대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시대가 열린다. 김정일 당시의 북-중 관계는 핵 문제로 사실상 냉전기였다. 하지만 김정일은 방중 때마다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2001년 장쩌민(江澤民)은 김정일을 수행해 상하이(上海)까지 갔었고, 2010년 후진타오(胡錦濤)는 김정일을 만나러 창춘(長春)까지 날아갔다. 전략적 이유 때문이었다고 해도 저변에는 정서적 유대가 흐르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30세의 김정은과 59세의 시진핑은 어떨까. 서로 공유할 게 많지 않아 보인다. 혁명의 추억도, 6·25전쟁의 경험도 없다. 둘의 관계는 희토류와 돼지고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 베이징의 한 교수는 김정은과 시진핑 시대의 양국은 감정을 쫙 뺀 ‘정상(正常) 외교’를 시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중 관계의 변화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재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단둥의 풍경은 앞으로 펼쳐질 양국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중 관계 역시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할 것이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