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경 음악칼럼니스트
뉴욕필 연주 망친 객석의 부주의
국내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작년 3월 8일 리카르도 샤이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해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의 엄숙한 느린 악장을 연주할 때 휴대전화가 오랫동안 울려 음악 애호가들의 빈축을 샀다. 콘서트가 끝난 뒤 지휘자는 “연주를 계속했지만 분명 벨소리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류 발명품 중 가장 성가신 것의 하나인 휴대전화 벨소리가 이제 일상의 소음을 넘어 공연장의 ‘폭탄’ 역할을 하고 있다.
공연장 측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고 사전 방송으로 에티켓을 적극 알릴 책임이 있다. 공연 때마다 이전에 녹음된 것을 동일하게 틀어서는 청중에게 긴장감을 부여하기 어렵다. 국내 한 공연장은 사전 방송에서 현장감 있게 재치 있는 멘트를 곁들여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홀처럼 공연 전 일부러 휴대전화 벨소리를 크게 방송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도 효과적이다.
또한 박수 에티켓도 중요하다. 2008년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내한공연에서 박수가 악장마다 터져 나와 연주자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박수를 저지했던 일이 있었다. 교향곡이나 소나타의 경우 모든 악장이 끝나고 박수를 치는 것이 관례다. 설령 곡의 마지막을 모른다고 해도 박수 치는 포인트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리거나 피아니스트가 손을 들고 일어설 때 박수를 치면 되는데 항상 더 성급하게 혹은 더 자주 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타인 배려해 ‘안다 박수’도 삼가야
곡이 끝나자마자 성급히 터져 나오는 박수, 일명 ‘안다 박수’는 더 큰 문제다. 특히 조용히 끝나는 곡이나 종교음악의 ‘안다 박수’는 마지막의 감동과 여운을 즐기고 싶은 다른 청중의 감흥을 해치는 ‘테러’에 해당한다. 즉 자신이 곡이 끝났음을 안다고 자랑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종교음악의 경우 ‘브라보’는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예를 들어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인 진혼곡이 끝나고 ‘브라보’를 외친다면 어떤 의미가 될까?
김문경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