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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치매증세 80대 강릉 야산서 조난… 강아지가 살렸다

입력 | 2012-01-16 03:00:00

“춥고 몽롱한데 못자게 비비고 깨물더라고”




풍산개와 진도개의 혈통을 이어받은 2개월 된 강아지가 치매 증세로 길을 잃고 한파 속에 쓰러진 80대 주인의 목숨을 구했다.

12일 오후 9시 20분경 강원 강릉시 청량동의 한 야산 들머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이모 씨(88)를 이 씨의 아들과 경찰이 발견했다. 평소 치매 증세가 심했던 이 씨는 이날 오후 4시경 집을 나간 뒤 귀가하지 않아 가족이 경찰에 신고하고 찾던 중이었다.

발견 당시 놀라운 장면이 목격됐다. 두 달 전 태어난 이 씨의 강아지가 이 씨의 몸을 비비고, 마치 쓰러진 주인을 향해 ‘어서 일어나라’고 말하듯 얼굴을 바라보며 계속 짖고 있었던 것. 이 강아지는 이 씨 집에서 키우던 3년생 수컷 풍산개와 친척이 기르던 암컷 진도개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으로 이 씨의 큰 아들이 한마리를 얻어 기르던 것. 이 씨는 모자와 장갑도 없는 평상복 차림으로 나간 상태여서 자칫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수십 명이 수색을 벌인 지 3시간여 만에 집에서 300여 m 떨어진 야산 기슭에서 이 씨가 발견됐다. 당시 이 씨는 사람을 알아볼 순 있었지만 점차 의식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또 체온도 34도로 저체온 상태였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이 씨는 치료를 받은 뒤 이튿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이 씨의 큰아들(64)은 “기운을 회복한 아버지께 당시 상황을 여쭸더니 ‘춥고 떨리고 자꾸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강아지가 계속 얼굴을 핥고 깨물고 주위를 맴돌며 짖어댔다’고 했다”며 “집에 데려온 뒤로 평소 집 밖에 수십 m 이상 나가는 걸 꺼렸던 강아지가 이날따라 웬일로 아버지를 따라갔나 했는데 결국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그런 것 같다”고 기특해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사고 당일 강릉의 최저 기온은 영하 5.4도, 최고 기온은 영상 4.1도였다. 하지만 해가 진 데다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느껴지는 매우 추운 날씨였다. 당시 수색에 나섰던 강릉경찰서 관계자는 “두툼한 옷을 입고 수색에 나섰지만 10여 분이 지나자 추위가 몰려올 정도로 기상상황이 안 좋았다”며 “강아지가 주인 품을 오가며 체온을 조금이나마 유지하도록 도운 점도 생명을 건지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씨 가족은 “3년 전 고교 동창한테 분양받아 키우는 풍산개와 이번에 교배시킨 진도개의 장점만 빼닮은 복덩이 명품견으로 여기고 가족처럼 잘 키우겠다”고 말했다.

강릉=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