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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st]현대차 인도시장 전용 저가 경차 ‘이온’

입력 | 2012-01-17 03:00:00

민첩성 탁월… 교통지옥 印서 진가 톡톡




10일 인도 뉴델리 시내에서 시승한 현대자동차의 ‘이온’은 27만 루피(약 600만원)부터 시작하는 초저가 경차지만 현지 교통 상황에 걸맞은 성능과 수준급의 품질을 자랑했다. 뉴델리=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인도 시장 전용 ‘이온(EON)’은 현대차가 해외 단일 국가만을 위해 개발한 최초의 모델이다. 이에 앞서 중국이나 유럽, 러시아 등에서 엑센트, 쏘나타 등 기존 모델을 시장별 여건에 맞춰 현지화한 차들이 있었지만 이온은 인도 시장만을 겨냥한 명실상부한 전략 차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가격은 26만9999∼37만5394루피(약 600만∼825만 원). 대형 오토바이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차가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팔고 있는 차종 중 가장 싸다. 가격이 중요한 선택 기준인 인도 시장의 특성에 맞춘 것이다.

어떻게 이처럼 낮은 가격에 차를 내놓을 수 있었을까, 또 인도 전용 차종은 과연 무엇이 다를까. 인도 현지에서 이온을 시승하며 성능과 특징을 살펴봤다.

○ ‘최저 가격’으로 ‘최대 만족’ 실현

10일 인도 뉴델리 중심부 마투라.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은 눈앞에 틈만 생기면 곧바로 끼어든다. 하루 종일 정체가 계속돼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일쑤다. 그래서 인도 도심에선 급격한 코너링을 하거나 직선구간을 빠른 속도로 달릴 일이 많지 않다.

이온은 0.8L에 불과한 저배기량 엔진을 쓰면서도 변속 기어비를 조정해 초반 가속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예상보다 민첩한 출발. 뉴델리의 혼잡한 시내 교통 상황에서 부족함이 없는 성능이었다.

뒷바퀴 쪽 서스펜션(현가장치)은 상대적으로 값싼 부품인 ‘토션빔’을 사용해 안락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거친 노면 위에서 차를 운전할 때 아래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지만 운전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인도 시장만을 위한 요소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온은 차 안 대시보드(운전석과 조수석 정면에 있는 운전에 필요한 각종 계기가 달린 부분 위 공간)를 평평하게 디자인했다. 종교생활을 중시하는 인도인들이 차 안에 각종 성물(聖物)이나 꽃 등을 장식하는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문 안쪽 음료수병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은 일반 승용차보다 컸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파는 차는 보통 500mL짜리 페트병 크기에 맞추지만 더운 날씨 때문에 물을 많이 마시는 인도에서는 750mL∼1L짜리 페트병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내장재는 얼룩이 잘 묻지 않는 재질을 사용했다.

이온의 디자인을 주도한 현지훈 현대차 남양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007년부터 4년간 현지인의 특성을 조사해 반영했다”며 “외관은 현대차 고유의 ‘플루이딕 스컬프처’(물이 흐르는 듯한 조각을 묘사) 디자인을 적용해 보급형 경쟁 차종과 차별화했다”고 설명했다.

○ 낮은 원가구조 어떻게 달성했나


이온은 전반적으로 적정 수준의 값싼 부품을 사용하는 한편 평지가 많고 눈이 내리지 않는 인도의 도로 환경을 감안해 과감히 차체자세제어장치(VDC)를 없앴다. 여기에 이온을 생산하는 현대차 첸나이 공장은 값싼 노동력을 통해 낮은 원가구조를 실현했다.

현대차는 인도 시장에서 소비자가 처음 사기 위해 고려하는 엔트리급의 차를 내놓기 위해 적정 수준 이상의 품질과 성능, 그리고 낮은 가격을 동시에 구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선진 시장을 무대로 활약하던 글로벌 자동차업체가 신흥 시장에 진출하며 ‘이중기준’의 벽에 부닥친 것이다. 무작정 싸게 만들자면 저질 부품을 써야 해 품질이 나빠질 뿐 아니라 지금까지 선진 시장에서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도 손상될 수밖에 없다.

고민하던 현대차는 지금까지 축적해온 원가절감 노하우와 생산기술 역량을 총동원하는 한편 현지 교통 상황을 철저히 연구해 가격과 품질의 균형점을 찾았다. 이온에 사용된 부품 대부분은 현대차와 인도 시장에 동반 진출한 협력사에서 현지 조달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 결국 이온은 현대차가 인도 시장에서 연간 60만 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하며 달성한 ‘규모의 경제’의 산물인 셈이다. 선택품목(옵션)에 따른 차량 등급은 총 6가지로 세분해 편리함보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는 값싼 등급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차는 인도 시장에서 최근 높은 금리와 유가 인상으로 신차 구매심리가 낮아진 상황에서도 이온을 월 8000대 이상 파는 성공을 거두었다. 한창환 현대차 인도법인 상무는 “경기가 호전되면 월 1만 대 이상 팔 수 있을 것”이라며 “현지 1위인 마루티스즈키의 시장점유율(43.3%)을 빠르게 잠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까지 인도에서 ‘이온’을 포함해 34만여 대의 승용차를 팔아 시장점유율이 19.2%다.

뉴델리=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