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수 명장 김현희 씨 롯데 갤러리서 전시회
보자기를 통해 전통의 재현과 변형을 시도한 김현희 명장. 그는 “솜씨가 사인”이라며 작품에 사인을 남기지 않는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새해를 맞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롯데백화점 12층)에서 29일까지 마련한 자수명장 김현희 씨(66)의 ‘복을 수놓다’전은 보자기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만나는 자리다. 전통을 재현하고 이를 새로운 시도와 방법으로 재창조한 작품이 어우러져 한국 자수와 보자기의 문화 예술적 가치를 확인하게 한다.
다양한 수를 놓은 수보, 다른 크기의 천을 이어 만든 조각보로 구성된 전시는 옛 여인의 멋과 시름이 담긴 보자기가 어떻게 현대적 미감을 표현하는 매체로 진화가능한지를 묻고 답한다.
전시에선 복주머니, 수저집, 흉배 등 초기 작품부터 현대 추상화처럼 보이는 보자기 등 50여 점을 볼 수 있다. 김 명장이 옛 여인의 솜씨를 다듬어낸 전통 보자기에선 고운 색감, 단순하고 해학적 문양이 조화를 이룬다. 그 뜻을 이은 창작 보자기에선 세련된 색감과 현대적인 디자인의 조화가 돋보인다. 특히 한 땀 한 땀 수실로 채운 색면의 감각적 분할, 자투리 천을 이어 생겨난 선과 구성의 미학이 융합된 작품은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생활공예와 현대적 추상회화의 만남이 나아갈 방향을 제안한다.
고관절을 다쳐 불편한 몸으로 전시장을 지키는 김 씨는 단 한 땀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전 작품을 손수 바느질했다. 그는 궁중 수방(繡房)나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윤정식 선생을 사사했고 1986년부터 보자기에 매달려 왔다. 국내외에 한국 보자기의 미학을 알리는 데 앞장선 그의 작업은 해외에서 더 주목받는다. 시애틀박물관과 하버드대박물관, 빈민속박물관이 작품을 소장했고 그의 ‘보자기’ 작품집은 일본에서 1만 부가 팔렸다.
○ 복을 짓다
김현희 명장의 수보와 조각보 작품들.
자투리 천과 낡은 옷을 재활용해 만들었던 조각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작업에서도 자기 표현의 길을 찾아낸 여인들의 솜씨를 다시 오늘에 불러낸 명장. 그의 보자기는 전통 자수의 깊은 맛, 현대의 미감이 서로 통섭하고 상생하는 살아있는 문화현장이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