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과 한국기업 간의 경영권 공방이나 법적 다툼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1992년 한국 자본시장이 처음 개방된 뒤 글로벌 시장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 중 하나다.
○ 1992년 1월 3일 첫 허용
정부는 1992년 1월 3일 기업별 지분 10%를 한도로 외국인 주식투자를 처음 허용했다. 이후 몇 차례 한도를 확대하다가 외환위기 후인 1998년 5월에는 아예 한도를 없애 시장의 빗장을 완전히 풀었다. 국내산업이 해외자본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와 기업들이 외국에서 손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어 우리 경제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이란 기대감이 교차했다.
○ 기업 지배구조 개선
SK는 2003년 4월 소버린자산운용과 경영권 다툼을 벌인 뒤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오너의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비율을 70%까지 올리고 감사위원회의 역할도 강화했다.
이처럼 외국자본의 경영권 장악 시도에 맞서 비싼 수업료를 치른 회사들 중 상당수는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다.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회계제도를 선진화하고 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지배구조의 변화도 나타났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등 증시 관계기관 출자회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외국인 지분이 높은 회사의 기업 지배구조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지분이 20% 이상인 상장회사 104곳과 전체 상장사를 비교한 결과 ‘B+’ 이상의 우수한 점수를 받은 기업 수는 외국인 지분이 많은 곳이 일반 기업의 2배였다.
○ 초우량 회사에만 투자
하지만 증권시장의 본래 역할인 기업의 경영자금 조달 측면에서 외국인투자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초우량 회사에만 투자하고 중견·중소기업 투자에는 관심이 낮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 투자의 72.9%를 100대 기업에 쏟아붓고 있다. 이 수치는 101∼300대 기업에서는 19.1%, 301대 기업 이하 600여 개 회사에서는 8.0%로 급격히 낮아진다. 외국인의 대기업 편중 현상이 심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및 경영권 위협을 통한 차익 회수 위험도 여전하다. 소버린자산운용의 예 외에도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도 KT&G의 경영권을 위협하다 1년여 만에 1500억 원의 차익을 얻고 나갔다.
KT&G 관계자는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아직 경영권을 위협하는 외국 자본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며 “‘포이즌 필’ 도입 등 경영권 안정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