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창피당하면 어쩌나…” 수치심 때문
《 집단따돌림을 당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들은 왜 더 나은 해결책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가. 그들 주변에는 교사는 물론이고 부모도 있지 않은가. (rebi****) 》
오랫동안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돌보면서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적잖이 만났다. 이들은 왜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 일찍 알리지 않을까. 가장 흔한 이유는 수치심 때문이다. 수치심은 물론 학교폭력에서만 나타나는 감정이 아니다. 언어 및 신체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등의 피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 일찍 말하는 학생과 말하지 못하는 학생의 차이는 바로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을 대하는 태도인 것이다.
사람에겐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차적 감정’이 있다. 기쁨과 슬픔, 분노, 호기심, 역겨움 등으로 이는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가지는 것들이다. 일차적 감정들은 점차 이차적 감정으로 분화해 인간은 점차 복잡한 감정들을 가지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크 에릭손은 사람의 감정이 사회적 경험을 통하여 단계별로 분화·발달하며, 수치심은 2∼3세에 경험하는 생애 초기의 사회적 감정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학습에 내몰리고, 평가에 따라 꾸중 듣고 벌 받고, 남과 비교되면서 상처를 받는다. 부모로부터도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누구든 폭력의 피해자가 되면 저항하고 공격하고 싶지만 상대가 집단일 때는 문제가 있다. 자신감과 힘이 발휘될 수 없는 것이다. 피해자가 특별한 약자일 때는 물론이거니와 어느 누구라도 집단폭력에 저항하긴 어렵다. 집단따돌림과 폭력에 함께 맞서야 할 주변 친구들도 무기력하니 피해학생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피해학생 구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도움을 구하면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위해서는 평소에 학생과 주변 어른들 간에 ‘신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은 사례연구는 알려주고 있다. 심각한 상황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부모나 교사가 학생과 진지하고 격의 없이 의사소통하면서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송동호 연세대 교수·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 과장
송동호 연세대 교수·세브란스 병원 소아정신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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