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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 자매, 3년 공들여 수십억 사기 ‘한 방’?

입력 | 2012-01-19 03:00:00

2004년 화양동 가게 열어 선물 돌리고 “부자” 소문… 3년간 마을서 인심 쌓아
이자 준다며 이웃 돈 빌려 4억넘게 챙기고 파산신청




2004년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인심 넉넉하고 사람 좋은 김모 씨(53) 자매가 가게를 열었다. 언니는 자신이 운영하는 노래방에 이웃들이 찾아오면 원 없이 ‘서비스’ 시간을 제공했다. 동생(49)은 자신의 옷가게에서 가져왔다며 바지와 티셔츠를 돌렸다. 자매는 고향의 특산물이라며 곶감도 안겨줬다. 동생 남편 구모 씨(59)는 한술 더 떠 동네 돌잔치나 장례식장을 모두 찾아다니며 일을 도왔다. 동생 부부는 명절마다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동네 이웃들에게 세배를 다녔다.

동네 인심을 얻은 자매는 서로 “언니가 돈이 많다” “동생이 부자다”라며 소문을 냈다. 언니가 “동생 남편이 부동산 개발회사 전무라 월급이 1000만 원”이라고 말하고 가면 동생이 찾아와 “언니 시댁이 마산 땅부자라 물려받으면 금세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주민 이모 씨(48·여)는 “손에 돈다발을 들고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자매를 보며 진짜 큰 부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이 씨는 나중에야 이 모든 게 ‘한 방’을 위한 준비작업이었다는 걸 알고 가슴을 쳤다.

자매는 2007년부터 급전이 필요하다며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돈을 빌리면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얹어 돈을 갚는 자매를 믿고 점점 큰돈을 빌려줬다. 자매의 사정도 다양했다. 아파트 분양권을 당첨 받았는데 현금이 조금 부족하다, 아들이 육군 대위인데 카드가 정지돼 진급을 못하게 됐다며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빌리고 갚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이 위암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모 씨(71·여)까지 찾아가 텔레뱅킹으로 2000만 원을 빌리기도 했다.

완벽해 보였던 가족 사기단의 행각은 지난해 7월 14일 구 씨가 서울중앙지법에 파산신청서를 내면서 드러났다. 이들에게 돈을 돌려받지 못해 민사 소송을 냈던 피해 주민이 파산 신청서에 적힌 채권자 목록에 다른 주민 여러 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결국 사기를 당한 주민이 모여 경찰에 고소하면서 이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룹 전무라던 동생 남편 구 씨는 영업사원으로 잠깐 일했던 신용불량자로, 담보로 잡은 집도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게다가 동생 부부는 실제 부부가 아닌 사실혼 관계였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광진구 화양동 주민 7명에게 4억6000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김 씨 자매와 동생 남편 구 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피해 주민들은 “남편 몰래 돈을 빌려주고 속으로 끙끙 앓는 사람 수십 명을 포함하면 피해액이 수십억 원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변제할 능력도 없으면서 돈을 빌렸다”며 “여전히 사기 친 게 아니라 돈을 갚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