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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개혁개방 성지’ 광둥… 한쪽선 쇼핑, 한쪽선 反부패시위

입력 | 2012-01-20 03:00:00

덩샤오핑 남순강화 20주년… 개혁개방의 명암




 

중국 광둥 성 선전시의 푸텐 해관. 선전과 홍콩을 연결하는 8개 해관 중 가장 대표적인 이곳을 통해 매일 수십만 명의 중국인과 홍콩인이 왕래하고 있다. 이곳에서 홍콩의 중심지까지는 불과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20년 전인 1992년 1월 18일.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당시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개혁개방의 성과가 막 꽃피던 남부 도시를 순례한다. 개혁개방 노선의 더욱 강력한 추진을 강조한 ‘남순강화(南巡講話)’다. 이로써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이후 ‘싱쯔싱서(姓資姓社·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논쟁 등으로 중단 위기에 직면했던 개혁개방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

당시 덩이 주로 찾은 광둥(廣東) 성은 31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가장 잘사는 지역이다. 반면 사회모순도 다른 지역보다 첨예해 최근 격렬한 시위가 곳곳에서 발생하는 등 변혁의 조짐이 일고 있다. 남순강화 20주년을 맞아 개혁개방의 출발지인 광둥 성이 안고 있는 빛과 어둠을 현지에서 살펴봤다.

○ 첫 경제특구로 번영하는 선전


17일 오후 5시 반경 홍콩 주룽(九龍) 반도의 번화가 침사추이에서 지하철, 전철을 갈아타고 1시간 만에 광둥 성 선전(深(수,천))의 푸톈(福田) 해관에 도착했다. 미리 등록된 홍콩 주민들은 지하철 출입구를 통과하듯 신분증 또는 지문만으로 전용창구를 통해 손쉽게 입국심사를 통과했다. 노란 가방을 둘러멘 100명은 족히 되는 유치원생들도 학생 전용 통로로 일사천리로 입국수속을 밟았다. 선전에 살면서 직장 또는 학교가 있는 홍콩으로 매일 오가는 사람들이다. 현재 선전에는 자녀를 홍콩의 학교에 보내는 부유층이 상당수 있다.

이처럼 홍콩 주민이나 선전의 중국인들은 자유롭게 양쪽을 오간다. 선전 주민 우잉춘(吳迎春·여) 씨는 “광둥 성 호구(戶口·중국의 호적)만 있으면 홍콩 마카오를 오갈 수 있는 복수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특권층만 향유하던 홍콩과 선전 간 이동을 이제는 매일 수십만 명이 함에 따라 선전-홍콩을 잇는 8개 해관 중에는 24시간 운영되는 곳도 있다. 홍콩인들이 대륙을 겨냥한 비즈니스 거점으로 선전을 이용한다. 부동산 값이 싼 선전으로 이사를 오는 사람도 있다. 광둥 성 부유층은 선전을 통해 물밀 듯이 홍콩에 도착해 쇼핑을 하고 있다.

선전은 이런 개혁개방 혜택을 받아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상주인구 1035만 명의 거대한 현대도시로 탈바꿈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덩이 남순강화의 두 번째 기착지로 선전에 도착해 올랐던 당시 중국 최고층인 53층의 ‘선전 국제무역센터’가 주변의 빌딩 숲에 가려 왜소해 보인다고 전했다. 선전은 75km 떨어진 광둥 성 둥관(東莞)에 이어 중국내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 2위의 도시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징(新京)보는 19일자에 사설로 “개혁이 힘겹지만 남순강화의 정신을 살려 개혁에 더욱 매진하자”고 강조했다.

○ 커져가는 민초들의 목소리


17일 광둥 성의 성도 광저우(廣州) 시. 시청사 앞 도로가 대형 플래카드와 원색의 깃발을 든 남녀노소 1000여 명에 의해 완전히 검거됐다. 이들은 광저우 외곽인 바이윈(白雲) 구의 왕강(望崗) 촌 주민들. 촌정부의 토지 수용에 항의하는 것이다.

시위대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왕강은 제2의 우칸(烏坎) 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칸 촌은 지난해 9월부터 넉 달간 마을 전체를 ‘해방구’로 만들면서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여 마침내 성 정부의 사과를 받아낸 곳이다.

덩의 남순강화 현장인 광둥 성은 이처럼 개혁개방이 남긴 부패와 반민주의 잔재를 걷어내라는 거센 압력에 부닥쳤다. 현재 광둥 주민들의 화두는 ‘우칸 모델’이다. 우칸 촌의 승리가 알려지면서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중국 광둥 성 광저우 시에서 17일 왕강 촌 주민 1000여 명이 촌정부의 토지 수용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광저우 시는 이튿날인 18일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사진출처 미국의소리(VOA)

‘제2의 우칸 촌’을 경고했던 왕강 촌은 시위 이튿날인 18일 광저우 시 부시장으로부터 부패 관료 조사, 촌정부에 대한 회계감사 등의 약속을 받아냈다. 홍콩 언론은 “우칸에 이어 광둥의 두 번째 마을이 (정부에)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우칸 모델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베이징(北京)에 상팡(上訪·수도에 올라가 억울함을 호소)을 하러 후난(湖南) 성에서 올라온 자오전자(趙振甲) 씨는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우칸 촌의 행동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우리는 우칸 촌의 힘을 봤다”고 말했다. 개혁개방이 잉태한 사회모순에 침묵하던 민중이 점차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개혁개방의 출발지인 광둥 성이 중국 사회 변화의 새로운 싹이 될지 주목된다.

홍콩·선전=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