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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태원]공산주의 작곡가 정율성

입력 | 2012-01-20 03:00:00


일제강점기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공산주의가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세를 얻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무산자(無産者)혁명 사상으로 무장한 항일무장투쟁이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을 유력한 대안으로 인식됐다. 항일투사들은 자연스럽게 국경 건너 중국을 무장투쟁의 주요 무대로 삼았다.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혁명가’ 김산도 중국 공산당에 가담해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중의 한 명이다.

▷광주(光州) 태생인 정율성도 19세가 되던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투쟁에 나선다. 김두봉, 무정이 중심이 된 조선독립동맹이 근거지로 삼던 옌안으로 간 정율성은 천재적인 음악성을 발휘해 ‘옌안송’ ‘연수요’ 등을 작곡하면서 마오쩌둥의 공산 혁명에 공헌을 했다. 중국에서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선정됐고 중국의 3대 현대음악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중국 공식군가인 ‘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다.

▷KBS가 15일 방영한 다큐멘터리 ‘13억 대륙을 흔들다, 음악가 정율성’을 두고 뒷말이 많다. 이 프로그램은 정율성의 행적 가운데 1945년 광복 이전의 활동에 초점을 맞춰 그의 삶을 미화하고 영웅시했다. 하지만 광복과 함께 북한에 들어간 그는 6·25전쟁 때 중공군으로 참전했고 북한 군가인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지어 김일성에게 바쳤다. 60분짜리 프로그램이 정율성의 북한에서의 행적에 할애한 시간은 2분 남짓하다. 중요한 사실을 빠뜨리는 것은 ‘생략의 왜곡’이다.

▷영국 공영방송의 제작 원칙에는 ‘국가 정체성 및 공동체 의식’ 항목이 있다. 영국 BBC가 1986년 영국에 대항하는 무장군사조직인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지도자 2명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자 영국 정부가 제동을 건 것도 이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정율성 프로그램을 만든 KBS PD 박건 씨는 ‘내가 수호하고 싶은 체제는 친일파 후손들과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이 냉전 이데올로기를 교묘히 이용해 잘 먹고 잘사는 그런 체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 씨는 세계 최악의 독재자 김일성의 하수인으로 대한민국에 총을 겨눈 공산주의자를 일방적으로 치켜세우는 것이 공영방송 KBS의 할 일인지 답해주기 바란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