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사진책 번역해주시던 아버님… ‘조건없는 후원자’였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그 다음 소중한 만남은 대학원에서 만난 아내 고춘혜(전 상지대 교수)다. 학창 시절 ‘바우하우스’ 관련 서적, 디자인 책, 사진집을 함께 보면서 토론했다. 내가 사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친구였다. 세계적인 사진가가 될 것이라고 항상 나를 격려해줬고, 내 수입과 시간을 모두 사진에 쓰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런 그가 49세에 세상을 등졌다.
인터뷰할 때마다 사진과 출신이 아닌데 어떻게 사진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고향 전남 여수에서 같이 자란 김병섭 형에게 빚진 것이다. 내가 대학 입학하던 해 형이 나를 부르더니 “난 사진 그만둘 터이니 네가 사진해라”며 니콘카메라, 마미야카메라, 동남확대기, 루나노출계를 물려줬다. 형이 쓰던 암실도 열어줬다. 고향에서 함께 어울리며 그림도 그리고 취미 삼아 사진도 찍었던 형. 그 병섭 형이 “병우가 사진에 맞겠다”며 내게 사진을 권한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사진을 하고 있다. 형도 수년 전 세상을 떠났다.
30대 중반, 새로운 시간과 환경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독일로 건너갔다. 빌레펠트대 사진과의 예거 교수를 만났다. 그를 통해 독일의 사진작가와 화가를 소개받고 미술관을 순례했다. 국제 수준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치열하게 새롭게 시작해야 함을 배웠다. 돌아와서 ‘한국 사진의 수평전’ 등의 기획을 김승곤(평론가), 김장섭 구본창(사진작가)과 함께했다. 이후 새로운 유행과 인식의 사진 시대를 열게 됐다고 자부한다.
1993년 예술의전당에서 ‘소나무’ 개인전을 열었을 때 은사 이대원 선생님(전 홍익대 교수)은 “배병우 개인전 최고다”라며 칭찬해 주셨다. 일생 동안 후배와 제자의 작품을 사주고 격려해주신 미술계 신사 이 선생님 또한 내 인생의 큰 부채다.
이듬해 일본에서 만난 지바 시게오 전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큐레이터와 시미즈 도시오 전 미토아트타워 미술감독은 나를 세계무대에 데뷔시키면서 ‘미스터 마쓰(松·소나무)’라는 칭호를 주었다. 지바 씨는 평생 소나무만 찍어도 된다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이뿐인가. 무역사업에서 은퇴하고는 나와 함께 산티아고 800km를 걸었던 김필규 선생, 나를 지원하고 북돋아온 가나화랑의 이호재 회장…. 지금까지 만난 모든 이는 현재진행형으로 미래의 나를 있게 해줄 분들이다.
배병우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