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은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 돈을 접수하려면 기탁서를 받아야 했다. 직원 전 씨는 “기부금을 정식으로 접수해야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다고 설득해 겨우 인적사항을 받았다”고 했다. 비닐봉지의 주인은 휘경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이모 씨(64)였다.
기자는 18일 오후 9시경 퇴근하는 이 씨를 그의 집 앞에서 만났다. 그는 허름한 트레이닝복에 검게 얼룩진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서울과 경기 일대를 다니며 보일러를 고치는 게 그의 직업이었다.
그는 어릴 적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고, 이후 공사장을 전전하며 막노동을 했다. 그러다 7년 전 기술을 배워 보일러 수리공 일을 하고 있다. “한창 때는 한 달에 100만 원까지 벌었는데 요즘은 일감이 없어 한 달에 60만∼70만 원을 벌어요.” 그는 10여 년 전 홀어머니를 여읜 뒤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8남매 키우느라 평생 고생만 하던 어머니가 쓸쓸히 떠나는 모습을 보니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남 같지 않더군요.”
하루 일해 2만∼3만 원을 손에 쥐지만 그중 1000∼2000원을 꼬박 모으면 1년에 50만 원 안팎이 됐다. 이 씨는 그 돈으로 10년간 ‘얼굴 없는 기부’를 해 왔다. 그는 “보잘것없는 돈을 기부하는 것일 뿐이고 괜히 알려져서 내가 좋아하는 일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10평 남짓한 이 씨의 집 한쪽에는 곳곳에 금이 가 노란색 테이프로 칭칭 감은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었다. 그가 틈틈이 잔돈을 모으는 ‘남을 위한 저금통’이었다. 이 씨는 그날도 주머니를 털어 500원짜리 동전 2개와 100원짜리 동전 6개를 넣었다. 며칠 전 비워낸 터라 저금통 안은 동전 개수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짜장면 배달 일을 하며 어린이들을 돕다 지난해 9월 세상을 뜬 김우수 씨도 그렇게 돈을 모았을 것 같았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허자경 인턴기자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