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소설가
일제강점기 숱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설날은 맥이 끊기지 않았다. 하지만 광복 뒤에도 구식 타파와 이중과세 방지라는 미명하에 전통 명절은 쉽사리 복원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과 유신정권 때까지 신정을 유지하다가 1985년 ‘민속의 날’로 명명해 하루를 공휴일로 정하고 1989년 비로소 ‘설날’이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해 90년 만에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그렇게 굴곡진 설날의 배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이 땅에서는 ‘설날’이라는 좋은 명칭보다 신정과 구정이라는 강점기의 잔해가 무감각하게 쓰이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기 488년 신라 비천왕 시절부터 설날을 보냈다는 삼국유사 기록으로 미뤄 그것의 전통성에 대해서는 중언할 필요가 없을 터다. 하지만 전통적인 설날 풍경과 지금 우리가 보내는 21세기 설날 풍경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깊고 아득한 거리감이 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유지되던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같은 풍경은 이제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복을 입고 동네 나들이를 하거나 세배를 다니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전통적인 놀이나 풍속 대신 현대인들의 손에는 설날 아침에도 여전히 휴대전화가 들려 있고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일가친족을 만나 오랜만에 대화의 꽃을 피우는 것보다 SNS를 위시한 모바일 세상에 몰입해 주변인은 건성으로 대하고 네트(NET)상의 실시간적 관계에 중독적인 집중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설’의 몇 가지 어원 중에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은 ‘익숙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그것은 곧 ‘낯설다’는 것이니 새해, 한 살 더 먹은 ‘새로운 나’를 만나는 날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해 첫날,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은 얼마나 신선한가.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한 해의 진로를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변명과 타성의 노예가 돼 살아가는 나, 남들에게 관심과 관용보다 짜증과 비난을 일삼으며 살아가는 나, 자기 욕망의 노예가 돼 이타보다 이기를 앞세우며 앙앙불락하는 나를 발견하는 ‘설’은 아프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껴안음으로써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는 전환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낯선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나를 설계하는 날, 모두에게 그런 설날이 되기를 기원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박상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