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소설 역사 철학 요리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는 ‘잡식’ 독서인이다. 한국어와 독일어는 물론이고 영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의 원서를 탐독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독일 출신으로 34년 전 한국에 건너와 1986년 귀화한 이 사장과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그림 이야기로 시작됐다. 그는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1867∼1956)를 좋아한다고 했다. 마침 이 사장이 ‘독서인’ 코너에서 추천하는 책 ‘독일어 시간’의 표지에는 놀데의 작품 ‘무희들이 있는 정물’(1914년)이 있었다. 놀데는 나치시절 당국에 의해 퇴폐예술이라는 이유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등과 함께 탄압을 받은 인물. 이 책에 등장하는 억압받는 화가는 바로 놀데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 사장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가치관이 형성되던 고등학생 때 이 소설을 처음 접했다. “책이 나온 1968년 당시 독일에는 나치시대 전체주의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남아 있었어요. 이 책에는 본성은 선한 사람인데도 악한 제도 아래서 의무라는 명목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게 되는 과정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독재에 대한 답답함, 제대로 된 사회제도는 뭘까, 개인의 자유와 창의력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지요.”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한 애정은 결국 훈민정음 반포 직전을 배경으로 한 ‘뿌리깊은 나무’에 빠져들게 했다. “한글은 과학적 철학적 예술적 요소를 모두 갖춘 천재적인 문자예요. 그에 더해 아주 신비로운 힘이 느껴지지요. 이 책도 그 힘을 잘 표현했어요.”
1980년대 후반 국내 대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글 교재를 집필하고 한글을 가르친 그는 한글의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웬만한 한국인들보다 해박한 지식을 내비쳤다. 이 사장은 “한글의 기본은 음양오행과 천지인 사상”이라며 “자음은 발음할 때 입속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기에 제가 외국인들에게 그 원리를 설명하고 한글을 가르치면 다들 20분 만에 한글을 읽기 시작한다”며 뿌듯해했다.
이 사장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다룬 책도 즐겨 본다. 언론인 이규태 씨의 ‘한국인의 의식구조’(전 4권·신원문화사), 한영우 교수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경세원) 등은 그가 참고서처럼 두고두고 보는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자택에 요리책이 100권 이상 꽂혀 있다는 것. 여행 갈 때마다 그 지방의 요리를 다룬 책을 기념으로 구입하고 이를 참고해 한식과 퓨전요리를 만든다. 그렇게 개발한 그만의 요리가 ‘된장 감자 크림수프’와 ‘고추장 파스타’ 등이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 관광 이야기로 옮아갔다. 2009년 귀화인 최초로 국내 공기업 사장에 오른 그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외래 관광객 980만 명 시대를 열었다. 그는 “한국의 역사에는 관광과 접목할 수 있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가득하다”며 역사적 공간의 스토리텔링 개발을 강조했다. “경복궁에서 건물만 봐서는 감동이 적어요.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던 수정전에서 옛 집현전의 모습을 재현하고, 세종대왕이 했을 그럴싸한 말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고궁에서도 ‘뿌리깊은 나무’나 ‘대장금’ 같은 재밌는 드라마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이참 사장의 추천 도서
◇독일어 시간/지크프리트 렌츠 지음/전 2권·민음사
나치 말기 당국이 화가 난젠의 창작활동을 금지하자 복종심 강한 파출소장은 난젠을 감시하다 못해 나치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그의 그림을 찾아 불태운다. 파출소장의 아들로서 화가를 지지하는 소년의 눈을 통해 전체주의를 비판한 소설.
◇뿌리깊은 나무/이정명 지음/전 2권·밀리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