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주필
7만 원 받은 교사 징계한 매운 손
서울중앙지법 김형두 부장판사가 ‘후보 사퇴 대가’로 2억 원을 받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는 징역 3년을 때리고 곽 교육감에게는 업무복귀가 가능한 벌금형을 매긴 이상, 곽 교육감의 복귀는 법적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양심의 가책을 털끝만큼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2010년 6·2 지방선거 하루 전날 곽 후보는 “서울시교육감 후보 중에 부패와 싸워본 사람은 나 말고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작년 7월에는 “반부패를 위해선 윗물이 맑아야 하는데 그 점에서 나는 누구보다 자유롭다”고 강조했다. 그 말의 울림이 남아있던 8월, 후보 매수 의혹이 터졌다. 이때 곽 교육감은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제가 어떻게 법 위반을 할 수 있겠습니까? 왜 저에게 항상 감시가 따를까요? 이른바 진보교육감이라는 이유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도 정치적인 의도가 반영된 표적수사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곽 후보는 34.3%를 득표해 33.2%의 이원희 후보에게 어렵게 이겼다. 선거과정에서 곽 후보는 같은 좌파계열인 박명기 후보를 사퇴시킨 반면, 이 후보는 같은 우파계열인 김영숙, 남승희 후보와 표를 갈라 가졌다. 김·남 두 후보의 득표율은 합쳐서 24%였다. 대가를 전제로 박 후보가 사퇴하지 않았더라도 곽 후보가 당선됐을지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곽 교육감 자신은 “민주진보진영 경선에서 다섯 분이 겨뤘는데 최종적으로 저로 단일화가 이뤄졌고, 특히 박 후보와의 막판 단일화는 제가 교육감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작년 8월 기자회견문에서 인정했다. 그때 곽 교육감은 “후보 단일화가 저에게 절실한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곽 교육감은 2007년 대선 때 창조한국당 대변인으로 문국현 후보를 도왔는데, 당시 곽 대변인은 후보 단일화에 대해 “무조건적 단일화는 정치공학적 단순셈법 단일화일 뿐,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며 반대한 기록이 있다.
독선적 진보, 師道인가 邪道인가
곽 교육감은 작년 9월 구속수감으로 직무를 정지당할 때까지 1년 2개월간 자신이 말한 대로 ‘비리 척결과 반부패 교육행정’의 선봉에서 칼을 휘둘렀다. 학교 현장의 100만 원짜리 비리도 퇴출 대상이 됐고, 7만 원을 받은 교사까지 징계됐다. 하지만 곽 교육감 자신은 대가성 있는 돈 2억 원을 미스터리 영화에 나올 듯한 방법으로 처리했지만 개선장군처럼 교육감 자리에 복귀했다. 그는 구치소에서 나오던 순간 보도진 카메라 앞에서 너무나 당당했다. 일순 그가 보였던 냉소 어린 표정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궁금했다.
선거에서 이기려고 유권자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줘도 안 된다. 이른바 ‘진보’라고 자칭하는 좌파 후보 둘 중에 하나를 ‘대가’를 전제로 사퇴시킨 것은 짜장면으로 치면 적어도 몇만 그릇은 될 것이다. 이런 부정(不正)을 부패로 인정하지 않는 인물이 서울시교육감으로 돌아왔다. 서울시교육청 관할하의 초중고에선 학생 130만 명이 자라고 있다. 이 아이들은 곽 교육감한테서 사도(師道)를 배울까, 사도(邪道)를 배울까.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