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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디지털 교과서

입력 | 2012-01-25 03:00:00


2009년 아널드 슈워제네거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고등학교 수학 과학 과목에 한해 종이 교과서를 없애고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캘리포니아는 실리콘밸리의 본산이며 기술과 혁신의 선두주자”라며 디지털 교과서를 선도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연간 3억5000만 달러에 이르는 교과서 예산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캘리포니아주의 재정적자 문제가 깔려 있었다.

▷당시의 디지털 교과서는 학생들이 컴퓨터로 교과서 내용을 내려받아 사용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태블릿PC의 등장으로 디지털 교과서도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다. 애플이 19일 발표한 ‘아이북스2’는 아이패드에서 교과서를 생생하게 구현해낸다. 수준 높은 콘텐츠와 태블릿PC의 장점을 결합한 디지털 교과서는 텍스트는 물론 다채로운 사진과 동영상을 제공해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교과서 제작회사에서 수시로 내용을 갱신하므로 학생들은 최신 지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미국은 디지털 교과서가 먹혀들 여지가 큰 나라다. 교과서가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교과서도 과목당 100달러가 넘는다. 주정부는 다른 학생들이 쓰다 남긴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학교 측에 주문한다. 미국 학생들은 교과서를 학교에서만 보고 깨끗한 상태로 보관해둬야 한다. 책에 자기 이름을 써도 안 되고 메모나 필기도 하지 못하며 학기가 끝나면 반납해야 한다. 교과서 없이 교사들이 제공하는 간이 교재로만 공부하기도 한다. 권당 14.99달러에 불과한 ‘아이북스2’가 매력적 대안이 될 만하다.

▷미국이 디지털 교과서에 적극적이라고 해서 우리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다. 올해는 국내 고등학교 선택과목 교과서 값이 자율화되는 원년이다. 가격 인상이 걱정되지만 아직까지 우리 교과서는 저렴한 편이다. 어렸을 때 종이책을 접하면 책 읽는 습관을 일찍부터 기를 수 있다. 디지털 교과서가 보급되면 태블릿PC를 들고 수업시간에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에 열중하지 말란 법이 없다. 더구나 종이책은 생각하는 습관을 만들어준다. 궁금한 점을 컴퓨터의 검색기능이 척척 해결해주면 학생들은 더는 생각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지적으로 퇴보할 우려가 크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