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여생 준비하려면 평론 하나만으론 어림없어혹시 아는가 ‘진모 빈대떡’이 음식한류 이끌 브랜드 될지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적어도 나에게 빈대떡은 세계를 흔들 미래의 문화상품이다. ‘3분짜리 유행가’에서 뿌듯한 ‘글로벌 케이팝’으로 격상을 거듭하는 우리 대중음악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빈대떡이 ‘음식 한류’의 선두에 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치킨가게 이상으로 동네 곳곳을 샅샅이 파고들고 있는 게 피자집이다. 심지어 대기업도 뛰어들었다. “도대체 우리 빈대떡이 피자보다 못할 게 뭔가?” 불만이 차올랐다. 급기야 몇년 전부터는 “빈대떡 가게를 내자!”는 자주적 실천목표로 바뀌었다.
고매하게 한류를 들이대는 건 대외적인 캐치프레이즈이고 실은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평생 소망이라고 할 화단, 연못 그리고 우물이 있는 집에서 누구 말대로 영혼이 자유롭게 ‘흔들거리도록’ 내버려두는 낭만적 여생을 준비하려면 생활 밑천을 마련해야 한다. 평론이라는 생계활동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 해결책이 바로 빈대떡 식당이다.
아버님도 만약 내가 한다면 조건 없이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다만 당신이 잊어버리기 전에 서둘러 배우라고 하신다. 친척 중에 의지가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는 땀을 너무 흘려서 곤란하다고 하셨다. 손님들 앞에서 빈대떡을 굽는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면 손님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장보기, 반죽, 굽기 등 전반의 기술을 터득하려면 최소 1년은 걸릴 것이라고 하셨다.
배움의 고통은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문제가 안 된다. 또 녹두빈대떡이든, 해물빈대떡이든, 고기빈대떡이든, 파전이든 다 맛있게 할 기본기는 있다고 자부한다. ‘빈대떡은 대개 막걸리나 소주 같은 술과 함께 먹으니까 쉽지 않겠지만 안주용으로 국물이 있는 탕을 창조적으로 개발해 보자’ ‘테이크아웃도 생각해보고’ ‘인터넷과 트위터로 홍보하는 SNS 빈대떡 가게를 만들자’…. 실행 아이디어가 마구 나래를 펼친다. ‘진모빈대떡’이 명품 패스트푸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떠오르는 것도 떼어 놓은 당상이다.
결심한 지 2년이 흘렀지만 활동으로 바쁜 탓에 아직도 제자의 아버님을 찾아 배우지도 못하고 있다. 슬슬 무기력감이 생겨 주위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된다 싶어 만약 내가 어려우면 아들이라도 시키자는 판단이 섰다. 제자와 아내를 동원해 군 복무 중인 아들을 설득하기도 했지만 아들은 제대한 후에도 답을 주지 않았다.
영국의 스타일 매거진 ‘모노클’을 창간한 세계적인 트렌드세터 타일러 브륄레가 해외에 수출해야 할 한국의 문화상품 10가지를 선정하면서 빈대떡을 9위로 뽑았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내가 더더욱 원망스러웠다.
임진모 음악평론가